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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 등장인물 감상평

행복한삶누리기 2025. 7. 24. 00:33

E.M.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은 1920년대 영국 지배하의 인도를 무대로, 인도인 의사와 영국인 교사 사이의 우정이 어떻게 오해와 편견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되는지를 그린, 20세기 영문학의 가장 중요한 소설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신비로운 고대 동굴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을 중심으로,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거대한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개인적인 차원의 선의와 이해가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통찰력 있게 보여줍니다. 포스터는 이 소설을 통해, 인종과 문화를 넘어선 진정한 인간적 연결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등장인물

  • 아지즈 박사 (Dr. Aziz): 젊고 감정적이며, 유머 감각이 뛰어난 인도의 무슬림 의사. 그는 처음에는 영국인들과 진정한 친구가 되기를 열망하지만, 부당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깊은 상처를 입고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여정은 영국 문화에 대한 순진한 동경에서 출발하여, 결국 격렬한 인도 민족주의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 시릴 필딩 (Cyril Fielding): 현지 관립 대학의 학장. 그는 인종적 편견 없이 인도인들과 동등하게 교류하려는,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영국인 지식인입니다. 그는 아지즈 박사의 유일한 영국인 친구로서, 그의 결백을 믿고 불의에 맞서지만, 결국 그 역시 두 문화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 아델라 퀘스티드 (Adela Quested): 이성적이고 진지하지만 다소 편협한 시각을 가진 젊은 영국 여성. 그녀는 시 법관인 로니 히슬롭과의 약혼을 결정하기 위해 인도를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관광객의 시선을 넘어 '진짜 인도'를 보고 싶어 하는 진보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마라바 동굴에서 겪은 미스터리한 사건은 소설의 중심 비극을 촉발하는 계기가 됩니다.
  • 무어 부인 (Mrs. Moore): 로니의 늙은 어머니이자 아델라의 동행인. 그녀는 이성보다는 직관과 신비주의적 감수성을 통해, 식민지라는 경계를 넘어 인도와 영적으로 교감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마라바 동굴에서 겪은 허무한 경험으로 인해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모든 것에 무관심해집니다.
  • 로니 히슬롭 (Ronny Heaslop): 시 법관이자 무어 부인의 아들. 그는 인도를 통치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전형적이고 오만한 영국인 관료입니다. 그는 인도인과 영국인 사이의 엄격한 사회적 분리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필딩의 개방적인 태도를 못마땅해합니다.

줄거리

소설은 가상의 인도 도시 찬드라포르를 배경으로, 총 3부(모스크, 동굴, 사원)로 구성된다.

1부, 모스크 (Mosque): '진짜 인도'를 보고 싶어 하는 영국 여성 아델라 퀘스티드와 무어 부인은, 자유주의적인 영국인 교장 필딩의 도움으로 인도인들과 교류할 기회를 갖는다. 특히 무어 부인은 모스크에서 우연히 만난 아지즈 박사와 깊은 정서적 유대를 형성한다. 아지즈는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싶은 마음에, 인근의 신비로운 고대 유적인 '마라바 동굴'로의 원정 여행을 즉흥적으로 제안한다.

2부, 동굴 (Caves): 소설의 클라이맥스인 마라바 동굴 여행. 이 동굴은 모든 소리를 "부움(boum)"이라는 공허하고 의미 없는 메아리로 되돌려 보내는 기이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동굴에 들어갔던 무어 부인은, 그곳에서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듯한 끔찍한 메아리를 경험하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한편, 아지즈와 단둘이 다른 동굴로 향하던 아델라는, 동굴 안에서 알 수 없는 사건을 겪은 후 히스테리에 빠진 채 뛰쳐나와, 아지즈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암시한다.

이 사건으로 아지즈는 즉시 체포되고, 도시는 인도인과 영국인 사이의 극심한 인종적 긴장감에 휩싸인다. 영국인 사회 전체가 아지즈를 유죄로 단정하는 가운데, 오직 필딩만이 그의 결백을 믿고 그의 편에 선다. 재판 당일, 증인석에 선 아델라는 사건을 증언하던 중, 동굴 속 메아리의 환영을 다시 경험하며 자신이 겪었던 일이 사실은 환각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법정에서 용감하게 자신의 고소를 취하한다.

3부, 사원 (Temple): 아지즈는 풀려나지만, 영국인들에 대한 그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난다. 재판의 여파로 필딩과의 우정에도 금이 간다. 수년 후, 두 사람은 힌두교 축제가 열리는 한 토후국에서 마지막으로 재회한다. 이제는 강경한 인도 민족주의자가 된 아지즈와, 무어 부인의 딸과 결혼한 필딩은 함께 말을 달리며 잠시나마 옛 우정을 회복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고, 하늘과 땅, 그리고 풍경 전체가 그들의 우정과 두 문화의 화합을 향해 "아직은 아니야(No, not yet)"라고 말하는 듯한 암시와 함께 소설은 끝을 맺는다.

감상평

'인도로 가는 길'의 핵심 주제는 '식민주의 하에서의 이문화 간 소통의 불가능성'이다. 아지즈와 필딩 개인의 선의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거대한 정치적 불균형과 뿌리 깊은 인종적 편견은, 그들의 우정이 동등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끝내 가로막는다. 소설의 유명한 마지막 구절은, 진정한 화합과 이해는 식민 관계 자체가 청산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는, 작가의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소설의 중심 상징인 '마라바 동굴'은 서구의 이성적인 잣대로는 결코 이해하거나 분류할 수 없는, 인도의 고대적이고 신비로운 본질을 나타낸다. 모든 것을 의미 없는 하나의 메아리 "부움"으로 되돌려 보내는 동굴의 특성은, 인간의 모든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거대한 우주적 혼돈(muddle)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은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의 한계'를 보여준다. 필딩은 이성과 관용, 개인적 관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최상의 지식인을 대표한다. 그러나 그의 합리주의는 동굴에서 일어난 비이성적인 사건을 설명하지 못하며, 아지즈와의 개인적인 우정만으로는 뿌리 깊은 정치적, 인종적 갈등을 극복하기에 역부족임이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인도로 가는 길'은 E.M. 포스터의 가장 야심 차고 심오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사람들을 갈라놓는 인간적, 문화적, 정치적 장벽에 대한 거장다운 탐구다. 포스터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와 잊을 수 없는 인물들을 통해, 식민주의의 유산과 진실과 이해의 애매모호한 본질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소설의 유명한 모호한 결말은 절망의 선언이 아니라, 진정한 연결과 화해는 단지 선의를 넘어, 근본적인 권력 구조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정직하고 현실적인 인식의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