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유대인 화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Se questo è un uomo)'는, 저자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보낸 10개월간의 경험을 기록한 20세기 가장 중요한 증언 문학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참상을 고발하고 고통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레비는 화학자로서의 냉철하고 분석적인 시선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실험실'과도 같았던 수용소의 작동 방식과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해부합니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제목의 준엄한 질문을 통해, 이 작품은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를 우리에게 묻는 강력하고도 필연적인 고전입니다.
등장인물 (실존 인물)
- 프리모 레비 (Primo Levi): 이 책의 저자이자 화자. 24세의 젊은 화학자이자 반파시스트 파르티잔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이송됩니다. 그는 자신을 영웅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합니다. 그는 운, 화학자로서의 기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기록하여 증언하겠다는 강한 의지 덕분에 살아남습니다.
- 알베르토 (Alberto): 수용소에서 레비가 가장 의지했던 친구. 그는 지적이고 강인하며, 두 사람은 서로를 도우며 비인간적인 환경에 맞섭니다. 그의 존재는 절멸의 공간 속에서도 살아남은 인간적 유대의 힘을 보여줍니다. 나치 패망 직전, 죽음의 행진에 끌려가 실종된 그의 마지막은 레비에게 깊은 상실감을 남깁니다.
- 장, '피콜로' (Jean, the "Pikolo"): 레비가 속한 작업반의 심부름꾼(피콜로)이었던 젊은 학생. 그는 어느 날 레비에게 수프를 함께 운반하자고 청하고, 그 짧은 이동 시간 동안 레비는 필사적으로 단테의 '신곡' 중 율리시스의 편을 암송하고 설명해주려 애씁니다. 이 장면은 지옥의 심장부에서 인간의 문화와 기억, 존엄성을 지키려는 처절한 저항의 순간을 상징합니다.
- '익사한 자'와 '살아남은 자': 레비가 수용소의 수인들을 구분하는 두 가지 유형. '익사한 자'는 수용소의 비정한 논리에 굴복하여 모든 인간적 의지와 존엄을 포기하고 죽어가는 절대다수를 의미합니다. 반면 '살아남은 자'는 운, 교활함, 도덕적 타협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살아남은 소수를 뜻합니다. 레비는 "가장 선한 자들은 살아남지 못했다"고 말하며, 생존의 의미에 대한 복잡한 시선을 드러냅니다.
줄거리
책은 1943년, 저자 프리모 레비가 이탈리아에서 반파시스트 운동을 하다 체포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고문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히고, 이내 아우슈비츠행 화물열차에 실리게 된다.
그는 인간을 화물처럼 취급하는 끔찍한 여정과, 수용소 도착과 함께 벌어지는 잔인한 '선별'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가족과의 강제적인 이별, 삭발, 그리고 팔에 '174517'이라는 숫자가 새겨지는 순간, 그는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존재가 된다.
레비는 수용소(라거, Lager)의 일상과 사회 구조를 마치 인류학자처럼 세밀하게 분석한다. 그는 살을 에는 굶주림과 혹독한 강제 노동, 수인들 사이의 복잡한 암시장과 위계질서, 그리고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기 위해 고안된 무의미하고 자의적인 규칙들을 묘사한다.
이야기는 연대기 순서를 따르기보다, 수용소 생활의 여러 측면을 탐구하는 주제별 장으로 구성된다. 그는 권력을 위임받아 다른 수인들을 억압하는 카포(Kapo)들의 모습과,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살아있는 시체처럼 변해버린 '무젤만(Mussulman)'들의 모습을 통해, 수용소 내의 복잡한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책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율리시스의 노래' 장에서, 레비는 동료 장에게 단테의 '신곡'을 암송해주며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상기시키려 노력한다. 철조망 너머의 세계, 즉 문화와 역사, 아름다움을 기억하려는 이 행위는 비인간화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이 된다.
전쟁 막바지에 레비는 화학자라는 이력 덕분에 공장 실험실에서 일하게 되고, 이는 그가 살아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소련군의 진격이 임박하자 나치는 수용소의 건강한 수인들을 모두 '죽음의 행진'으로 끌고 가지만, 성홍열에 걸려 병사에 격리되어 있던 레비는 남겨진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나치가 떠나고 소련군이 도착하기까지 열흘간의 혼돈을 그린다. 레비와 몇몇 병자들은 시체가 널린 얼어붙은 수용소에서 스스로 식량을 구하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남는다. 마침내 소련 병사들이 도착하는 장면으로 책은 끝을 맺는다.
감상평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제목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이다. 레비에게 아우슈비츠는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시험하기 위한 '거대한 사회적 실험'이었다. 그는 존엄, 도덕, 동정심 같은 인간적인 가치들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말살되는지를 냉철하게 기록한다. 그러나 동시에, 수프 한 그릇을 나누는 작은 친절, 시 한 구절을 기억하려는 노력 속에서, 인간의 정신이 비록 연약할지언정 쉽게 소멸되지 않는다는 증거들을 발견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힘은 '증언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나온다. 레비는 감상적인 언어나 과장을 철저히 배제하고, 화학자다운 정확하고 절제된 문체로 사실을 전달한다. 그는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를 강요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한다. 끔찍한 사실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고발이라는 그의 믿음은, 이 책에 시대를 초월하는 무게와 진실성을 부여한다.
또한 레비는 선과 악을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동족을 억압하는 데 협력해야 했던 수인들의 도덕적 딜레마, 즉 '회색 지대(gray zone)'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는 그들을 섣불리 비난하지 않으며, 수용소라는 극한의 논리가 어떻게 희생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도덕성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이것이 인간인가'는 20세기의 모든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중 하나다. 이 책은 끔찍한 고통의 기록이지만, 동시에 지성과 도덕적 명료함, 그리고 깊은 휴머니즘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프리모 레비의 담담한 증언은 우리에게 쉬운 위로나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인류의 가장 어두운 가능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고, 우리 자신의 인간성이 얼마나 연약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한치의 거짓 없이 돌아보게 만든다. 한번 읽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영혼에 깊이 각인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