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파리대왕』은 어린 소년들이 주인공이지만, 그들이 겪는 심리와 갈등은 어른 세계의 축소판이자 인간 본성의 거울처럼 작용한다. 랄프는 지도자적 기질을 지닌 소년으로, 질서와 협력을 중시한다. 그는 처음부터 구조 신호를 위한 불을 피우고 집단 규칙을 세우는 등 문명적 가치를 유지하려 한다. 반면 잭은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소년으로, 점점 폭력성과 지배욕에 사로잡힌다. 그는 사냥에 집착하며 자신만의 부족을 만들어 야만성을 조직화한다. 피기는 지식과 이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신체적으로는 약하지만 이성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끝내 억압받고 버림받는다. 또 다른 인물 사이먼은 신비롭고 내면의 진실을 보는 인물로, '파리대왕'의 진실을 직면하지만 집단의 광기에 희생된다. 각 인물은 문명, 본능, 이성, 신앙 등 인간 심리의 다양한 측면을 상징하며, 그들의 관계는 결국 무정부 상태로 치닫는 과정을 드러낸다.
줄거리
핵전쟁 도중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떨어진 소년들은 어른 없이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처음에는 랄프의 지도 아래 규칙을 만들고 구조 신호용 불을 피우며 협동을 시도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잭의 사냥 집착이 커지며 아이들은 점점 본능과 야만에 끌리게 된다. 잭은 랄프의 리더십에 반발해 자신의 부족을 만들고, 그곳에서는 사냥과 제사, 공포를 이용한 통치가 이루어진다. 사이먼은 '파리대왕'이라 불리는 돼지 머리의 환영 속에서 두려움의 정체가 외부가 아니라 내부, 곧 자신들임을 깨닫지만, 아이들의 집단 광기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피기도 결국 살해당하고, 랄프는 잭의 부족에 쫓기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 마지막 순간, 한 해군 장교가 등장해 소년들을 구출하지만, 아이들은 문명으로 돌아간 기쁨보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충격에 사로잡힌다. 이야기는 아이들의 실패한 사회를 통해 인간 본성과 문명의 불안정함을 드러낸다.
감상평
『파리대왕』은 인간이 문명을 벗어났을 때 얼마나 쉽게 야만으로 퇴행할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윌리엄 골딩은 어린이들이라는 순수한 존재를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그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간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폭력성과 집단 광기다. 랄프와 잭의 대립은 질서와 혼돈, 이성과 본능의 충돌을 상징하며, 피기와 사이먼의 희생은 문명과 도덕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생존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악과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억누르는지를 날카롭게 묻는다. 또한 집단 속에서 개별적 윤리감은 얼마나 쉽게 무시되는지, 두려움과 권력이 어떻게 결합해 억압과 폭력을 낳는지를 차갑게 그려낸다. 『파리대왕』은 짧지만 강렬하며, 오늘날에도 정치, 교육, 사회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되는 고전으로서,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