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
토니 모리슨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대표작 '빌러비드(Beloved)'는, 미국의 노예제도가 남긴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그 끔찍한 기억의 대물림을 그린, 미국 문학사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소설은 자신을 쫓아온 노예주에게서 딸을 지키기 위해, 차라리 자기 손으로 딸을 죽이는 끔찍한 선택을 했던 한 흑인 여성 노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그로부터 18년 후, 죽었던 딸이 '빌러비드'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돌아와 엄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을 통해 그려냅니다. '빌러비드'는 단순한 유령 이야기가 아니라, 억압된 과거가 어떻게 현재를 잠식하고 유령처럼 떠도는가에 대한 강력한 은유입니다.
등장인물
- 세서 (Sethe): 이 소설의 주인공. '스위트 홈'이라는 농장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 탈출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다시 붙잡으러 온 노예주로부터 갓난 딸을 '지키기' 위해 딸을 살해한 끔찍한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습니다. 그녀는 과거를 잊으려 애쓰며, 살아남은 딸 덴버와 함께 유령 들린 집에서 고립된 채 살아갑니다.
- 빌러비드 (Beloved): 세서의 집 근처 물가에서 갑자기 나타난, 스무 살 안팎의 신비로운 여성.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며, 단것과 세서의 이야기에 대한 끝없는 허기를 보입니다. 그녀는 세서가 죽인 딸의 귀환이자, 6천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은 노예제라는 거대한 역사적 트라우마가 육화(肉化)된 존재입니다. 그녀는 억압된 과거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 덴버 (Denver): 세서의 살아남은 어린 딸. 그녀는 평생을 유령의 그늘 아래, 외부 공동체와 단절된 채 극심한 외로움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녀에게 빌러비드의 등장은 처음에는 반가운 친구였지만, 점차 엄마를 독차지하는 질식할 듯한 존재가 됩니다. 그녀의 성장은 고립된 과거에서 벗어나 공동체와 연결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 폴 D (Paul D): 세서와 함께 '스위트 홈' 농장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남자. 그는 수년이 지나 세서의 집을 찾아와, 그녀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만들려 노력합니다. 그는 노예제 하에서 남성성과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흑인 남성들의 고통을 대변합니다.
- 베이비 석스 (Baby Suggs): 세서의 시어머니. 아들이 돈을 모아 자유의 몸이 된 후, 흑인 공동체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그녀는 숲 속 공터에서 흑인들에게 스스로의 몸을 사랑하라고 설교했지만, 세서의 끔찍한 사건 이후 절망에 빠져 죽음을 맞습니다. 그녀의 기억은 공동체의 사랑과 절망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줄거리
소설은 1873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외곽의 '124번지' 집에서 시작된다. 이 집은 세서가 죽인 아기 딸의 유령에 씌어 있다. 유령의 소행으로 두 아들은 집을 나갔고, 이제 세서와 그녀의 딸 덴버만이 유령과 함께 고립되어 살고 있다.
어느 날, 과거 '스위트 홈' 농장에서 함께 지냈던 폴 D가 찾아온다. 그의 등장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가져오고, 그는 집안을 어지럽히던 아기 유령을 잠시나마 쫓아낸다. 그러나 그 직후, 흠뻑 젖은 채 자신의 이름을 '빌러비드'라고 말하는 정체불명의 젊은 여인이 마당에 나타난다. 세서는 그녀를 집에 들이고, 덴버는 난생처음 생긴 친구에게 기뻐한다.
빌러비드의 존재는 집안에 기묘한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세서의 모든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려 하며, 세서가 겪었던 과거의 일들을 마치 자신이 겪은 것처럼 알고 있다. 점차 세서와 덴버는 그녀가 바로 18년 전 죽었던 딸의 현신임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는 과거 회상을 통해 소설의 중심 트라우마를 드러낸다. 노예 신분에서 탈출하여 오하이오에서 28일간의 짧은 자유를 누리던 세서는, 그녀를 잡으러 온 옛 주인 '학교 선생'과 마주친다. 그 순간, 세서는 자신의 아이들을 노예의 삶으로 돌려보내지 않기 위해, 그들을 모두 죽이려 했고, 그 과정에서 갓난 딸의 목숨을 빼앗았던 것이다.
폴 D는 이 끔찍한 비밀을 전해 듣고 충격에 빠져 세서를 떠난다. 혼자 남겨진 세서는 빌러비드에게 자신의 과거를 변명하고, 살아생전 주지 못했던 사랑을 쏟아붓는다. 빌러비드는 엄마의 죄책감을 양분 삼아 점점 더 강해지고, 둘의 관계는 과거에 잠식당하는 파괴적인 공생 관계가 된다.
엄마가 쇠약해져 가는 것을 본 덴버는, 마침내 수년간 벗어나지 못했던 집 마당을 떠나 마을 흑인 여성 공동체에 도움을 청한다. 소설의 클라이맥스, 마을 여성들은 124번지 집 앞에 모여 일종의 퇴마 의식처럼 노래를 부른다. 바로 그때, 덴버에게 일자리를 주선하려던 한 백인이 집에 접근하고, 세서는 그를 '학교 선생'으로 착각하여 다시 한번 과거의 트라우마에 휩싸인다. 그녀는 쇄빙기를 들고 그를 공격하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을 여성들이 그녀를 막아선다. 이 혼돈 속에서, 빌러비드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신비롭게 사라진다.
사건 이후, 공동체는 세서를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폴 D도 돌아와 그녀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도록 돕는다. 소설은 마을 사람들이 빌러비드를 집단적으로 잊으려 노력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것은 전해 줄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감상평
'빌러비드'는 노예제라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해방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어떻게 대를 이어 개인과 공동체의 영혼에 유령처럼 출몰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탐구다. 빌러비드라는 존재는 단순한 초자연적 유령이 아니라, 억압되고, 말소되고, 기억되기를 거부당했던 과거 그 자체의 현신이다. 이 소설은 그 끔찍한 과거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하고 애도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토니 모리슨은 '회상(rememory)'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 기억의 본질을 탐구한다. 세서에게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행위가 아니라, 특정 장소에 남아있어 다른 사람도 경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실체다. 124번지 집은 말 그대로 과거의 고통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인물들은 잊고 싶은 기억과 잊어서는 안 될 기억 사이에서 투쟁해야만 한다.
또한 이 작품은 노예제 하에서의 '모성애'를 복합적이고 비극적인 시선으로 재정의한다. 자신의 딸을 살해한 세서의 행위는 괴물 같은 악행이 아니라, 자식을 노예라는 더 큰 죽음으로부터 지키려는, 뒤틀리고 끔찍한 형태의 '거친 사랑'으로 그려진다. 소설은 독자에게, 노예제가 인간에게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불가능한 선택을 강요했는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빌러비드'는 엄청난 천재성과 깊은 감정적 힘을 지닌 작품이다. 이 소설은 유령 이야기이자, 역사 소설이며, 한 국가의 서사시다. 토니 모리슨의 시적이고 유려한 문체는 잔혹할 정도로 사실적이면서도 마술적인 공명이 있는 세계를 창조해냈다. '빌러비드'는 미국 역사의 어두운 심연으로 떠나는,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한 여정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겪고도 살아남아, 공동체의 도움으로 치유의 긴 과정을 시작하는 인간 정신의 회복력에 대한 강력한 증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