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 윌리엄스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는 쇠락한 남부 귀족 출신의 한 여인이 자신의 위태로운 환상의 세계를 지키려다 잔혹한 현실 앞에 처참히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린, 미국 현대 연극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여동생의 집에 도착한 주인공 블랑쉬 뒤부아와, 그녀의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제부 스탠리 코왈스키의 충돌은, 단순한 인물 간의 갈등을 넘어섭니다. 이는 섬세하고 낭만적인 과거의 환상과, 거칠고 냉혹한 현실 사이의 피할 수 없는 비극적 대결에 대한 시적이고도 강렬한 은유입니다.
등장인물
- 블랑쉬 뒤부아 (Blanche DuBois): 이 비극의 주인공. 몰락한 남부 대농장 '벨 레브(아름다운 꿈)' 출신의 나이 든 미녀이자 전직 영어 교사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추문과 트라우마로 가득한 과거를 숨기기 위해, 고상한 숙녀인 척하며 거짓과 환상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필사적으로 구축합니다. 그녀는 낭만적이지만 위선적이고, 섬세하지만 위태로운, 사라져가는 구시대의 가치를 상징합니다.
- 스탠리 코왈스키 (Stanley Kowalski): 블랑쉬의 제부이자 스텔라의 남편. 폴란드계 이민자 출신의 노동자로, 거칠고, 힘이 넘치며, 본능에 충실한 원초적인 남성성의 화신입니다. 그는 블랑쉬의 가식과 허영을 꿰뚫어 보고, 그녀의 환상을 파괴하려는 잔인한 현실주의자입니다. 그는 새롭게 부상하는 미국의 거칠고 실용적인 힘을 상징합니다.
- 스텔라 코왈스키 (Stella Kowalski): 블랑쉬의 여동생이자 스탠리의 아내. 그녀는 언니가 속한 과거의 환상과 남편이 속한 현재의 현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합니다. 그녀는 언니를 사랑하지만, 남편인 스탠리의 동물적인 매력에 강하게 이끌려 있습니다. 결국 그녀는 언니의 파멸을 방관하며, 고통스럽지만 현실적인 삶을 선택하는 인물입니다.
- 해럴드 "미치" 미첼 (Harold "Mitch" Mitchell): 스탠리의 포커 친구. 다른 친구들과 달리 다소 섬세하고 예의 바른 남성입니다. 그는 블랑쉬가 꾸며낸 순결한 숙녀의 모습에 매료되어 그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블랑쉬에게 안정된 미래를 약속해 줄 마지막 희망이었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되자 가차 없이 그녀를 거부합니다.
줄거리
가문의 농장 '벨 레브'를 모두 잃은 블랑쉬 뒤부아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뉴올리언스의 허름한 지역에 사는 여동생 스텔라의 비좁은 아파트에 찾아온다. 그녀는 고상하고 우아한 태도를 유지하려 하지만, 그녀의 제부인 스탠리는 처음부터 블랑쉬의 가식적인 모습을 의심하고 경계한다.
블랑쉬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숨긴 채, 순결한 남부 숙녀 행세를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그녀는 스탠리의 친구인 미치와 교제하며, 그와의 결혼을 통해 위태로운 삶에서 벗어날 마지막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스탠리는 집요하게 블랑쉬의 과거를 파헤친다. 그는 블랑쉬가 고향인 로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으며, 미성년자인 제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교사직에서 해고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극의 클라이맥스는 블랑쉬의 생일날 찾아온다. 스탠리는 잔인하게도 로럴로 돌아가는 버스표를 생일 선물이라며 건네고, 이어서 미치에게 자신이 알아낸 모든 사실을 폭로한다. 순결한 여인인 줄 알았던 블랑쉬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미치는, 그녀를 찾아와 거칠게 모욕하고 떠나버린다.
그날 밤, 스텔라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간 사이, 스탠리는 술에 취해 낡은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환상에 잠겨 있는 블랑쉬와 마주친다. 두 사람 사이의 격렬한 언쟁 끝에, 스탠리는 공포에 질린 블랑쉬를 폭력적으로 제압한다. 이 장면은 그가 블랑쉬를 강간했음을 암시하며 막을 내린다.
몇 주 후, 마지막 장면에서 블랑쉬의 정신은 완전히 붕괴되어 있다. 스텔라는 언니의 끔찍한 이야기를 믿는 대신,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의사와 간호사가 도착하자 블랑쉬는 겁에 질려 저항하지만, 의사가 신사적으로 손을 내밀자, 그녀는 그의 팔을 잡고 유명한 마지막 대사를 읊조린다.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저는 언제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아왔어요." 스탠리가 흐느끼는 스텔라를 달래는 가운데, 블랑쉬는 낯선 이들의 손에 이끌려 떠나며 비극은 완성된다.
감상평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핵심 갈등은 블랑쉬로 대표되는 '환상'과 스탠리로 대표되는 '야만적인 현실' 사이의 충돌이다. 블랑쉬는 추악한 현실과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詩)와 거짓말, 그리고 '마법'과 같은 환상의 보호막을 친다. 반면 스탠리는 본능으로 살아가며 환상 따위에는 아무런 관용도 베풀지 않는, 잔혹한 현실 그 자체다. 이 희곡은 현대 사회에서 연약한 환상은 결국 거친 현실에 의해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다는 비극적인 진실을 보여준다.
제목이 암시하듯, '욕망'은 모든 인물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다. 성적인 욕망, 안정에 대한 욕망, 과거로부터의 도피 욕구 등 다양한 형태의 욕망이 인물들을 파멸로 이끈다. 스탠리와 스텔라를 묶어주는 강렬한 육체적 욕망은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블랑쉬의 비극을 초래하는 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은 '몰락하는 구시대'에 대한 애가(哀歌)이기도 하다. 블랑쉬는 '아름다운 꿈'이라는 이름의 농장 벨 레브와 함께 사라져가는, 교양 있고 낭만적인 남부 귀족 사회의 잔해다. 반면 폴란드계 이민자의 아들이자 산업 사회의 노동자인 스탠리는, 이 낡은 세계를 대체하는 새롭고 무자비한 미국의 힘을 상징한다.
결론적으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한 연약한 영혼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시적인 언어와 강렬한 감정의 힘으로 그려낸 미국 드라마의 걸작이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끔찍한 세계를 창조해내며, 그녀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파멸해가는 블랑쉬의 모습에 깊은 연민을 보낸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낯선 사람의 친절'이 결국 그녀를 파멸의 공간으로 이끈다는 결말의 깊은 아이러니는, 이 작품을 잊을 수 없는 비극으로 완성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