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이 자신의畢生의 역작으로 꼽았던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은, 20세기 초 캘리포니아의 샐리나스 밸리를 배경으로, 트래스크가와 해밀턴가라는 두 가문의 수십 년에 걸친 역사를 그린 장대한 가족 서사시입니다. 이 소설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영원한 투쟁을 탐구합니다. 스타인벡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과연 운명이나 타고난 본성에 얽매인 존재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의지로 선(善)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그 해답을 '팀셸(Timshel)'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담아냅니다.
등장인물
- 애덤 트래스크 (Adam Trask):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는 인물. 그는 선량하고 이상주의적이지만, 때로는 수동적인 인물로, 성서 속 '아벨'을 상징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동생의 질투를 받으며, 아내에게 배신당하는 등 평생에 걸쳐 고통을 겪습니다.
- 찰스 트래스크 (Charles Trask): 애덤의 이복동생. 그는 강인하고 폭력적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로, 형 애덤을 질투하는 '카인'을 상징합니다. 그의 내면에는 어둠과 함께 기묘한 형태의 순수함이 공존합니다.
- 캐시 에임스 / 케이트 트래스크 (Cathy Ames / Kate Trask): 이 소설의 가장 강렬하고 무서운 인물. 그녀는 천사와 같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그 안에는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순수한 악(惡)의 영혼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녀는 애덤의 아내가 되어 쌍둥이 아들 캘과 에런을 낳지만, 곧 그들을 버리고 떠나 거대한 사창가의 주인이 됩니다. 그녀는 유혹자이자 파괴자인 '이브'의 현대적 화신입니다.
- 캘 트래스크 (Caleb "Cal" Trask): 애덤의 아들이자 소설 후반부의 실질적인 주인공. 그는 어둡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이 사악한 어머니의 본성을 물려받았다고 믿으며 고뇌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선량한 쌍둥이 동생 에런에게 질투를 느끼는, 이 소설의 두 번째 '카인'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타고난 악을 극복하려는 인간 의지의 투쟁을 보여줍니다.
- 에런 트래스크 (Aron Trask): 캘의 쌍둥이 동생. 그는 아버지처럼 순수하고 이상주의적이며, 세상의 추악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는 이 소설의 두 번째 '아벨'입니다.
- 새뮤얼 해밀턴 (Samuel Hamilton): 해밀턴가의 가장이자, 작가 스타인벡의 외할아버지를 모델로 한 인물. 그는 가난하지만 지혜롭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발명가입니다. 그는 소설의 도덕적 중심축 역할을 하며, 애덤 트래스크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줍니다.
- 리 (Lee): 트래스크가의 중국인 요리사이자 하인. 그는 단순한 하인이 아니라, 깊은 지혜와 통찰을 지닌 철학자입니다. 그는 소설의 핵심 사상인 '팀셸'의 의미를 발견하고, 등장인물들에게 중요한 정신적 지침을 제공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줄거리
소설은 남북전쟁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캘리포니아 샐리나스 밸리에 정착한 두 가문, 트래스크가와 해밀턴가의 역사를 교차하며 서술한다.
1부에서는 애덤과 찰스 형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 형제는 아버지의 사랑을 두고 경쟁하며, 이는 성서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한다. 이후 애덤은 악마적인 본성을 지닌 캐시와 결혼하고, 쌍둥이 아들 캘과 에런을 낳는다. 그러나 캐시는 남편에게 총을 쏘고, 갓난아기들을 버린 채 떠나버린다.
2부에서는 쌍둥이 형제 캘과 에런의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아내에 대한 이상화된 환상에 빠진 애덤은 무기력한 아버지가 되고, 아이들은 실질적으로 중국인 하인 리와 이웃 해밀턴가의 보살핌 속에서 자란다. 순수하고 선한 에런과 달리, 캘은 자신이 사악한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한다.
캘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를 만회하고 사랑을 얻기 위해, 전쟁을 이용해 큰돈을 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의 돈을 기쁘게 받기는커녕, 오히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며 그를 꾸짖는다. 반면, 성직자가 되겠다는 순수한 동생 에런을 더 자랑스러워한다. 아버지에게 또다시 거부당했다고 느낀 캘은, 질투와 분노에 휩싸여 이상주의자인 에런을 그들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추악한 사창가로 데려간다.
어머니의 실체에 충격을 받은 에런은 모든 이상을 잃고 군에 입대했다가 전사하고 만다.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들은 애덤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맨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던 캘은,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한다. 마지막 순간, 리는 애덤에게 아들을 용서하고 축복해달라고 간청한다. 애덤은 마지막 힘을 다해, 아들을 향해 구원의 단어 "팀셸(Timshel)"을 속삭이고 눈을 감는다.
감상평
'에덴의 동쪽'은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거대한 성서적 주제를 한 가족의 역사 속에 녹여낸 대서사시다. 스타인벡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세대를 거쳐 끊임없이 반복되는 원형적인 드라마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가장 위대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는 '팀셸(Timshel)'이라는 단어의 재해석에 있다. 현명한 하인 리는 성서의 카인 이야기를 연구하다가, 신이 카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말한 히브리어 원문 '팀셸'이 "너는 ~해야만 한다(명령)"가 아니라, "너는 ~할 수도 있다(선택)"라는 의미임을 발견한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핵심 철학이다. 즉, 인간은 운명이나 타고난 본성(죄)에 의해 지배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선(善)을 선택하고 악(惡)을 극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캘의 고통스러운 성장은 바로 이 '팀셸'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또한 이 작품은 스타인벡이 쓴 가장 거대하고 야심 찬 미국적인 서사다. 샐리나스 밸리라는 구체적인 공간의 개척사와, 창세기라는 인류의 보편적인 신화를 결합함으로써,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순수성과 폭력성, 그리고 그 도덕적 풍경을 그려내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에덴의 동쪽'은 존 스타인벡의 가장 깊고 개인적인 성찰이 담긴 걸작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삶에 어둠과 배신, 그리고 대물림되는 죄악이 존재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의 '선택의 자유'라는 위대한 가치를 옹호한다. '에덴의 동쪽'에서 추방된 인간의 숙명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팀셸'의 메시지는, 시대를 넘어 깊은 감동과 희망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