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헬러의 '캐치-22(Catch-22)'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미 육군 항공대의 폭격수 존 요사리안이 겪는 부조리하고 광기 어린 사투를 그린, 미국 현대 문학의 걸작입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전쟁의 비극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개인을 옥죄는 거대한 군대 관료주의의 비논리적이고 자기모순적인 본질을 통렬하게 풍자합니다. "살기 위해 전투 비행을 피하려는 제정신인 사람은 미치지 않았으므로 비행을 해야 한다"는, 빠져나갈 수 없는 규정 '캐치-22'는, 이 소설을 넘어 부조리한 딜레마 상황 그 자체를 일컫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헬러는 비선형적인 서사와 블랙 유머를 통해, 미친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한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을 유쾌하고도 끔찍하게 그려냅니다.
등장인물
- 존 요사리안 (Captain John Yossarian):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반(反)영웅. 미 육군 항공대의 폭격수인 그는, 적군뿐만 아니라 아군 지휘부를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확신합니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이며, 이를 위해 온갖 꾀병과 기행을 일삼습니다. 그는 미친 세상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려는 유일한 정상인처럼 보입니다.
- 캐치-22 (Catch-22): 소설의 가장 유명한 '등장인물'이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군대의 규정.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친 사람은 비행 임무에서 제외될 수 있다. 그러나 비행 임무에서 제외되기 위해 스스로 미쳤다고 신청하는 사람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므로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즉, 이 규정 때문에 그 누구도 합법적으로 비행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이는 관료주의의 자기모순적이고 비논리적인 함정을 상징합니다.
- 캐스카트 대령 (Colonel Cathcart): 요사리안 부대의 지휘관. 장군이 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그는, 상부의 눈에 들기 위해 부하들의 출격 횟수를 끊임없이 늘리는 인물입니다. 그는 부하들의 생명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야심만만하고 공허한 권력의 화신입니다.
- 마일로 마인더바인더 (Milo Minderbinder): 부대의 식당 관리 장교에서 시작하여, 온 유럽을 무대로 암거래를 하는 거대 기업 'M&M 엔터프라이즈'의 총수가 되는 인물. 그는 '회사에 이익이 되는 것은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논리 아래, 심지어 적군과 계약을 맺고 자신의 부대를 폭격하기까지 하는, 자본주의의 광기를 상징합니다.
- 오어 (Orr): 요사리안의 텐트 동료. 항상 비행기를 불시착시키는 괴짜 조종사입니다. 그는 늘 뺨에 게맛살을 넣고 다니는 등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탈출을 위해 일부러 비행기 불시착을 연습하고 있었고, 마침내 작은 뗏목을 타고 중립국 스웨덴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는 숨겨진 합리성과 생존 의지를 보여주며 요사리안에게 영감을 줍니다.
줄거리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지중해의 작은 섬 피아노사에 주둔한 미군 폭격 비행대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고,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 사이를 혼란스럽게 오가며 부조리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소설의 중심 줄기는 주인공 요사리안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필사적인 투쟁이다. 비행대대의 지휘관인 캐스카트 대령은 자신의 진급을 위해 계속해서 의무 출격 횟수를 늘리고, 요사리안은 제대를 눈앞에 두고 번번이 좌절한다.
요사리안은 비행을 피하기 위해 간에 병이 있는 척하며 병원에 입원하고, 지도 위의 폭격 목표 지점을 몰래 옮겨놓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심지어 미쳤다는 판정을 받으려 하지만, 군의관은 그 유명한 '캐치-22' 규정을 들어 그의 요청을 기각한다.
소설은 비행대대의 다른 인물들이 겪는 초현실적이고 희비극적인 일화들로 가득 차 있다. 마일로 마인더바인더는 자신의 회사를 위해 전 유럽을 상대로 암거래 제국을 건설하고, 다른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어이없고 무의미한 방식으로 죽어 나간다.
요사리안의 내면에는 '스노든'이라는 젊은 부상병의 죽음에 대한 끔찍한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다. 비행 중 크게 다친 스노든이 자기 품 안에서 죽어가며 "나는 추워"라고 속삭이던 기억과, 그의 몸에서 쏟아져 나온 내장을 본 끔찍한 광경은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드러나며, 요사리안이 가진 환멸의 근원을 설명해준다.
모든 친구들이 죽거나 실종되고 출격 횟수는 끝없이 올라가자, 요사리안은 마침내 탈영을 결심한다. 상관들은 그에게, 만약 자신들을 칭찬하고 부대의 정책을 옹호해준다면 명예롭게 집으로 보내주겠다는 위선적인 거래를 제안한다. 그러나 그는 겉보기에 미친놈 같았던 룸메이트 오어가 스웨덴으로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용기를 얻는다. 그는 상관들의 거래를 거부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홀로 도망치기로 결심하며 소설은 끝난다.
감상평
'캐치-22'의 핵심적인 비판 대상은 전쟁 그 자체라기보다, 전쟁을 수행하는 '관료주의 시스템'의 광기다. '캐치-22'라는 규정은, 개인이 거대한 시스템의 비논리적인 함정에 빠졌을 때 저항하거나 탈출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상징이다. 헬러는 진짜 적은 독일군이 아니라, 아군의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관료주의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 소설은 '미친 세상 속에서의 제정신'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캐치-22'의 세계에서는 상식적인 가치관이 전복된다. 살고 싶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욕망은 정신병으로 취급될 수 있는 빌미가 되고, 마일로처럼 체제의 광기를 극단적으로 이용하는 자는 성공한 인물로 추앙받는다. 소설은 근본적으로 미쳐있는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반응하는 것이 오히려 미친 짓처럼 보일 수 있음을 역설한다.
또한 마일로 마인더바인더라는 캐릭터를 통해, 헬러는 자본주의의 부식성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가한다. "M&M 엔터프라이즈에 좋은 것은 곧 국가에 좋은 것"이라는 그의 논리는, 이윤 추구라는 목적이 어떻게 도덕, 충성심, 심지어 상식마저 마비시키고, 결국 아군을 돈 받고 폭격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지를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캐치-22'는 미국 풍자 문학의 위대한 성취다. 이 작품은 혼란스러운 구조와 격렬한 유머를 통해 전쟁의 깊은 트라우마를 전달하는, 지독하게 웃기면서도 동시에 끔찍하게 슬픈 소설이다. 조지프 헬러는 이 작품과 '캐치-22'라는 말을 통해, 비논리적이고 빠져나갈 길 없는 시스템에 갇힌 현대인의 절망감을 완벽하게 포착해냈다. 이 소설은 죽음에 집착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싶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욕망이 얼마나 격렬하고 찬란한 저항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눈부시고 광기 어린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