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은 20세기 문학에 혁명을 가져온 모더니즘의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작가 자신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반쯤 투영한 이 소설은, 주인공 스티븐 데덜러스가 유년기의 순수한 감각에서부터 출발하여, 엄격한 가톨릭 교육, 죄의식과 신앙의 갈등, 그리고 지적인 각성을 거쳐 마침내 한 사람의 '예술가'로 탄생하는 과정을 내밀하게 추적합니다. 조이스는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혁신적인 문체와 서술 기법을 통해, 한 예민한 영혼이 자신을 옭아매는 가족, 종교, 국가라는 '그물'을 벗어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단련해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등장인물
- 스티븐 데덜러스 (Stephen Dedalus): 이 소설의 주인공. 그의 이름은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St. Stephen)'와, 아들을 위해 날개를 만들어 미궁을 탈출한 그리스 신화 속 '장인 다이달로스(Daedalus)'를 합친 것입니다. 그는 예민한 감수성과 지성, 그리고 강한 자의식을 지닌 인물입니다. 소설은 그의 시선과 의식을 통해, 그가 겪는 내면의 모든 성장통과 지적 편력을 따라갑니다. 그는 아일랜드라는 현실의 감옥을 벗어나 예술의 힘으로 비상하려는 젊은 예술가의 원형입니다.
- 사이먼 데덜러스 (Simon Dedalus): 스티븐의 아버지. 조이스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인물로, 유쾌하고 감성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하여 가세를 계속 기울게 만듭니다. 그는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와 감상적인 과거를 상징하며, 스티븐이 벗어나고자 하는 세계의 일부입니다.
- 메리 데덜러스 (Mary Dedalus): 스티븐의 어머니.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아들이 신앙의 길을 걷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스티븐이 벗어나고자 하는 '가정'과 '종교'라는 굴레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 크랜리 (Cranly): 스티븐의 대학 시절 가장 친한 친구. 그는 스티븐의 복잡한 미학 이론과 종교적 고뇌를 들어주는 고해 신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스티븐은 자신의 사상을 더욱 명확히 하고, 과거와의 결별을 최종적으로 결심하게 됩니다.
줄거리
소설은 주인공 스티븐 데덜러스의 내면의 성장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간다.
유년기: 이야기는 "옛날 옛적에 아주 좋은 시절에..."로 시작하는, 아기 스티븐이 느끼는 단편적이고 감각적인 세계의 묘사로 문을 연다. 그는 곧 엄격한 규율의 예수회 기숙학교인 클롱고우즈 우드 칼리지에 보내져, 부당한 처벌과 질병, 그리고 소년들의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관계와 불의를 경험한다.
청소년기: 아버지의 실직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스티븐의 내면도 성숙해간다. 그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성적 욕망에 눈뜨게 되고, 더블린의 매춘부와 첫 경험을 한 뒤 독실한 가톨릭 교육 아래에서 극심한 죄의식에 시달린다. 그는 학교의 종교 수련회에서 지옥에 대한 무시무시한 설교를 듣고 공포에 질려, 한동안 극단적일 정도로 경건한 신앙생활에 몰두한다.
소명과 대학 시절: 그러나 스티븐의 광적인 신앙은 점차 식어간다. 그는 사제가 되라는 권유를 받지만, 이를 거절하고 자신의 진정한 소명이 신이 아닌 '예술'에 있음을 깨닫는다. 해변에서 물속을 거닐고 있는 한 소녀의 모습을 보고 지상(地上)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자신의 길임을 확인하는, 일종의 미적(美的) 계시를 경험한다.
미학과 반항: 대학생이 된 스티븐은 친구들과 토론하며 자신만의 복잡한 미학 이론을 정립해 나간다. 그는 점차 자신을 둘러싼 세계, 즉 감상적인 가족, 경직된 교회의 교리, 그리고 편협한 아일랜드 민족주의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며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한다.
망명: 소설은 스티븐이 기록한 일기 형식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소명을 실현하기 위해 아일랜드를 떠나 파리로 망명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나의 영혼의 대장간에서 나의 민족의 창조되지 않은 양심을 벼려내겠다"는 유명한 선언을 남긴다. 그의 마지막 문장은 신화 속 아버지이자 위대한 장인에게 보내는 기도다. "오랜 아버지, 오랜 장인이여, 지금 그리고 언제까지나 저를 도와주소서."
감상평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핵심 주제는 '예술가적 정체성의 단련 과정'이다. 이 소D설은 한 예술가가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대한 가장 심도 깊은 문학적 보고서다. 주인공 스티븐은 가족, 종교, 국가가 그에게 부여하려는 정체성들을 체계적으로 거부하고, 오직 자기 자신의 영혼과 예술을 창조해내려 한다. 그의 여정은 곧 반항과 자기 창조의 과정이다.
이 소설이 문학사에 혁명을 가져온 가장 큰 이유는 그 독창적인 '문체'에 있다. 조이스는 독자가 주인공의 생각과 감각의 흐름 속에 직접 뛰어들게 하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을 사용한다. 특히 소설의 문체 자체가 주인공의 성장에 따라 함께 진화한다는 점이 놀랍다. 유년기의 감각적인 언어에서 시작하여, 청소년기의 죄의식으로 가득 찬 문장들을 거쳐, 대학 시절의 지적이고 현학적인 미학 토론에 이르기까지, 소설의 형식은 그 내용을 완벽하게 반영한다.
스티븐이 벗어나고자 하는 '그물(nets)'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그에게 아일랜드의 삶을 구성하는 가족, 종교, 민족주의는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을 옭아매는 그물이다. 그는 이 그물들을 '날아서' 벗어나야만 진정한 창조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작가 제임스 조이스 자신이 평생 고향 아일랜드를 떠나 망명 생활을 했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결론적으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모더니즘 문학의 가능성을 폭발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소D설은 한 청년이 예술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지적이면서도 내밀하게 탐구한다. 조이스는 혁신적인 문체와 심오한 주제 의식을 통해, 반항과 자기 발견, 그리고 자신의 영혼의 '대장간'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벼려내는 고통스럽지만 필연적인 투쟁에 대한 영원한 초상을 그려냈다. 이 작품은 제임스 조이스뿐만 아니라, 20세기 문학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