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의 첫 장편소설 '구토(La Nausée)'는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탄생을 알린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 앙투안 로캉탱이 겪는 정체불명의 역겨운 느낌, 즉 '구토'를 통해, 세상 모든 것의 존재가 아무런 필연성 없이 그저 '거기 있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구토'는 흥미진진한 사건 대신, 한 인간이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존재의 실상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현기증과 공포,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정당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뇌를 담은, 한 편의 철학적 보고서입니다.
등장인물
- 앙투안 로캉탱 (Antoine Roquentin):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일기의 작성자. 그는 프랑스의 소도시 '부빌'에 머물며 18세기 한 귀족의 전기를 집필하고 있는 30대의 역사학자입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해변의 조약돌이나 나무뿌리 같은 평범한 사물들을 마주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역겨움, 즉 '구토'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의 일기는 이 '구토'의 정체를 밝히고, 그로부터 비롯된 철학적 깨달음을 기록하는 과정입니다.
- 독학자 (The Self-Taught Man / Autodidact): 로캉탱이 부빌의 도서관에서 자주 마주치는 인물. 그는 도서관의 모든 책을 알파벳 순서대로 읽어나가며 인류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려는 희극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지식과 박애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인본주의자(휴머니스트)'로, 로캉탱이 최종적으로 거부하게 되는 낡은 사상을 대표합니다.
- 아니 (Anny): 로캉탱의 옛 연인이자 배우. 로캉탱은 '구토'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줄지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파리에서 그녀와 재회합니다. 그러나 과거 '완벽한 순간'을 창조하는 것에 집착했던 그녀 역시,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냉소적인 태도로 살아가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녀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처하는 또 다른 실패한 방식의 예시입니다.
- 롤르봉 후작 (Marquis de Rollebon): 로캉탱이 전기를 쓰고 있는 18세기의 모험가. 그는 이미 죽은 인물이지만, 로캉탱에게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로캉탱은 처음에는 그의 '필연적인' 삶을 연구함으로써, 자신의 '우연적인'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만, 결국 이 작업이 자기기만에 불과함을 깨닫고 포기합니다.
줄거리
소설은 프랑스의 지방 도시 부빌에 사는 역사학자 앙투안 로캉탱이 자신의 일기를 쓰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주변의 사물들을 볼 때마다 정체 모를 불쾌감과 현기증, 즉 '구토'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이 감각의 원인을 파헤치려 애쓴다. 그는 무의미한 정사(情事)에 빠져보기도 하고, 부르주아들의 위선적인 일요일 산책을 경멸적으로 관찰하기도 하며, 도서관에서 우스꽝스러운 '독학자'를 만난다.
'구토'는 점점 더 심해진다. 어느 날 공원에서 밤나무 뿌리를 바라보던 로캉탱은 마침내 결정적인 깨달음의 순간을 맞는다. 그는 '구토'가 바로 '존재' 그 자체의 맛임을 깨닫는다. 나무뿌리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물,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 아무런 이유나 목적, 필연성 없이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들의 존재는 '우연적'이며, 그 자체로 과잉이고 부조리하다는 끔찍한 진실과 마주한 것이다. 이 깨달음은 그의 역사 연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결국 그는 롤르봉 후작의 전기 집필을 포기한다. 마지막 희망으로 옛 연인 아니를 만나러 파리로 가지만, 그녀 역시 삶의 의미를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절망한다. 부빌로 돌아온 그는, 도서관에서 추문에 휩싸인 '독학자'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인본주의적 이상과도 완전히 결별한다.
소설의 마지막, 로캉탱은 부빌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한 카페에서 우연히 재즈 노래 '어떤 날들(Some of These Days)'을 듣던 그는, 자신의 우연하고 무질서한 존재와는 달리, 그 노래는 완벽하고 필연적인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는 여기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한다. 어쩌면 자신도 역사책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예술 작품을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무의미한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감상평
'구토'는 사르트르의 핵심적인 실존주의 사상,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를 문학적으로 완벽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로캉탱은 사물이나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목적이나 '본질'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든 것은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먼저 '실존'할 뿐이며, 의미나 본질은 그 이후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만들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구토'는 바로 이 날것 그대로의, 무의미한 실존과 마주했을 때의 감각이다.
소설의 중심 개념인 '우연성(Contingency)'은 부조리함의 근원이다. 로캉탱의 깨달음은, 세상이 지금의 모습이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밤나무 뿌리는 거기에 '있어야 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을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빌의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역할과 일상이 마치 필연적이고 정해진 것처럼 여기며 자기기만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무의미한 세상의 이면에는 '절대적 자유'가 있다. 미리 정해진 목적이 없다면,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은" 존재가 된다. 그러나 사르트르에게 이 자유는 해방감이 아니라, 구토를 유발하는 끔찍한 부담이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창조해야만 하는 현기증 나는 책임감이기 때문이다.
이 암울한 철학적 탐구는 마지막에 이르러 '예술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희미하게 제시한다. 재즈 노래는 로캉탱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단단하고, 필연적이며, 완벽하다. 로캉탱은 하나의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우연적인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며, 자신의 삶에 일종의 필연성을 부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구토'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하나의 '존재 상태'를 기록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지극히 철학적인 소설이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의미와 자유, 그리고 현실의 본질에 대한 불편한 질문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실존주의의 선언문과도 같다. 사르트르의 위대함은, 추상적인 철학 개념을 '구토'라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신체적 감각으로 전환시켰다는 데 있다. 비록 암울하고 방향감각을 잃게 만드는 여정이지만, 이 소설은 결국 무의미한 세상 속에서 '창조'라는 행위가 인간의 가장 진실하고 희망적인 응답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