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tà invisibili)'은 소설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긴 명상시이자, 상상력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찬가로 불리는 작품입니다. 이 책은 늙고 권태에 빠진 타타르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 칸과, 젊은 베네치아의 여행자 마르코 폴로가 나누는 대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마르코 폴로는 황제의 광대한 영토 안에 있는 55개의 가상 도시들에 대해 묘사하고, 황제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제국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사유합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이 모든 환상적인 도시들은 결국 마르코 폴로의 고향인 '베네치아'라는 단 하나의 도시를 비추는 거울임이 암시됩니다.
등장인물
- 쿠빌라이 칸 (Kublai Khan): 끝없이 넓은 영토를 정복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제국이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해져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게 된, 지치고 우울한 황제입니다. 그는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소유했으나 결코 알 수 없는 제국의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그는 '질서', '이성', 그리고 '권력의 한계'를 상징합니다.
- 마르코 폴로 (Marco Polo): 베네치아 출신의 여행가이자, 쿠빌라이 칸의 신임을 받는 사절. 그는 자신이 여행했던 도시들의 이야기를 황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꾼입니다. 그는 언어와 상상력의 힘을 통해 세계를 재창조하고 이해하는 인물로, '경험', '상상력', '언어'를 상징합니다. 처음에는 황제와 신하의 관계였던 이들은, 점차 깊은 지적 파트너 관계로 발전합니다.
- 보이지 않는 도시들 (The Invisible Cities):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들. 55개의 도시는 각각 여성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도시와 기억', '도시와 욕망', '얇은 도시들', '도시와 죽은 자들' 등 11개의 주제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거미줄 위에 세워진 도시, 주민들이 저마다 다른 도시의 꿈을 꾸는 도시, 산 자보다 죽은 자의 영향력이 더 큰 도시 등, 각각의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적 우화이자 상상력의 실험입니다.
줄거리
이 책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줄거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고도로 정교하게 짜인 구조가 서사를 대신합니다. 책의 핵심은 마르코 폴로가 묘사하는 55개의 상상 도시에 대한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도시 묘사들은, 황제의 정원에서 쿠빌라이 칸과 마르코 폴로가 나누는 아홉 개의 대화 장면에 의해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은 마르코 폴로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의미, 언어의 본질, 제국의 운명 등에 대해 철학적인 문답을 나눕니다.
처음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 몸짓과 실물로 소통하던 마르코 폴로는, 점차 황제의 언어를 배워 더욱 정교하고 철학적인 묘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기억'을 주제로 한 도시들은 과거를 어떻게 마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며, '기호'를 주제로 한 도시들은 인간이 기호를 통해 어떻게 현실을 구축하는지에 대한 우화입니다.
대화가 깊어지면서 쿠빌라이 칸은 이 모든 도시들이 결국 단 하나의 도시, 즉 마르코 폴로의 고향 '베네치아'의 다른 모습들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마르코 폴로는 기억 속에서 자신의 도시를 재구성함으로써 그것을 이해하려 하고, 황제 또한 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거대한 제국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얻습니다.
책의 마지막, 두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지옥'과 같은 도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마르코 폴로는 지옥 속에서 고통받지 않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일부가 되어 더 이상 그것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위험하고 지속적인 주의와 파악을 요구하는 것으로,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이 아닌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어 알아보고, 지속시키고,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감상평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도시'는 지리학적 공간이 아니라, 심리학적 공간이다. 각각의 환상 도시는 인간의 욕망, 기억, 두려움, 혹은 철학적 개념 하나하나를 상징하는 거대한 은유다. 칼비노는 도시라는 메타포를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복잡하고 보이지 않는 내면의 풍경을 지도로 그려냅니다.
이 작품은 또한 '언어'의 힘과 한계에 대한 깊은 명상이다. 마르코 폴로의 묘사가 곧 도시 그 자체다. 절대 권력자인 황제 쿠빌라이 칸조차, 자신의 제국을 오직 이야기꾼의 언어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은 세상을 구축하는 상상력과 언어의 힘을 찬미하는 동시에, 어떤 설명도 실제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는 언어의 근원적인 한계를 인식하게 한다.
소설의 정교하고 대칭적인 구조는 혼돈스러운 세계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다. 무한한 상상력의 가능성과, 그것을 담아내는 유한한 구조의 규칙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적인 체스 게임과도 같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산문시의 이면에는 깊은 우울함이 깔려있다. 폴로가 묘사하는 도시들 중 상당수는 쓰레기의 도시, 감시의 도시, 영혼 없는 반복의 도시 같은 디스토피아다. 이 책은 현대 도시 생활과 그 속에 내재된 '지옥'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힐 수 있다. 마지막에 폴로가 제시하는 희망은, 지옥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옥 속에서 '지옥이 아닌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켜내려는 작고 힘겨운 노력이다.
결론적으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문학이라는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경지 중 하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책은 줄거리를 따라가는 대신, 독자 스스로가 사색하고 상상하며 그 의미를 채워나가도록 초대하는 철학적인 퍼즐 상자와 같다. 칼비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물리적 도시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짓고 있는 내면의 도시가 어떻게 서로를 비추는지를 눈부시게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