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등장인물 감상평

행복한삶누리기 2025. 7. 11. 11:09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The Sound and the Fury)'는 미국 남부의 한때 명망 높았던 콤슨 가문이 겪는 30년에 걸친 몰락과 해체를 그린,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정점에 있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그것은 백치가 들려주는 이야기,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으나 아무 의미도 없는..."에서 제목을 따온 것처럼, 혼란스럽고 파편적인 서사 구조로 유명합니다. 포크너는 네 명의 다른 화자를 통해 같은 사건을 다른 시간과 시점에서 서술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과거의 상처가 어떻게 현재를 지배하고 한 가문을 파멸로 이끄는지를 독자가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강렬하고도 비극적인 서사를 창조해냈습니다.

등장인물

  • 벤지 콤슨 (Benjy Compson): 콤슨가의 막내아들. 서른세 살이지만, 정신지체로 인해 세 살 아이의 지능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는 말을 하지 못하며, 오직 후각과 같은 감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구분 없이 넘나들며 세계를 인식합니다. 소설의 1부를 서술하는 그의 의식의 흐름은 논리 없이 파편화되어 있으며, 독자는 그의 혼란스러운 기억의 조각을 통해 콤슨 가문의 비극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됩니다. 그는 누나 캐디와 불, 그리고 옛 목초지에 대한 집착을 보입니다.
  • 퀜틴 콤슨 (Quentin Compson): 첫째 아들.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예민하고 지적인 청년입니다. 그는 몰락한 남부 가문의 명예와, 특히 누나 캐디의 순결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는 과거의 시간에 갇혀 고뇌하다가, 결국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서사는 자살을 앞둔 하루 동안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따라갑니다.
  • 캐디 콤슨 (Caddy Compson): 콤슨 가의 유일한 딸. 이 소설의 서술자로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모든 비극의 중심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오빠들과 달리 따뜻하고 정열적인 인물이지만, 그녀의 성(性)적인 문란함과 그로 인한 임신, 그리고 불행한 결혼은 가문 몰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그녀는 오빠들이 집착하고 그리워하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잃어버린 사랑을 상징합니다.
  • 제이슨 콤슨 4세 (Jason Compson IV): 둘째 아들. 그는 냉소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가족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지만, 조카(캐디의 딸)의 돈을 횡령하는 등 비열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는 몰락한 남부의 전통 대신, 비정한 현실 논리만을 따르는 '신남부'의 부정적인 측면을 대표합니다.
  • 딜지 (Dilsey): 콤슨 가의 흑인 하녀. 수십 년간 묵묵히 콤슨 가의 곁을 지키며 모든 붕괴 과정을 목격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이 혼돈과 타락 속에서 유일하게 사랑과 인내,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잃지 않는 도덕적 중심입니다. 작가는 그녀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는 인간의 숭고한 인내를 보여줍니다.

줄거리

소설은 총 네 개의 부로 나뉘어, 각기 다른 날짜에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1부 (1928년 4월 7일): 정신지체아 벤지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그의 의식은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기 때문에, 독자는 현재 일어나는 일과 과거의 기억들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서술을 마주하게 된다. '캐디'라는 이름이 들릴 때마다 그는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과 그녀가 떠나간 슬픔을 동시에 느끼며 울부짖는다.

2부 (1910년 6월 2일): 하버드 대학생 퀜틴의 시점으로, 그가 자살하기로 결심한 하루 동안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의 머릿속은 누나 캐디의 순결 상실과 가문의 명예에 대한 강박, 그리고 시간에 대한 고통스러운 사유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시간을 멈추기 위해 할아버지의 시계를 부수지만, 결국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물에 투신한다.

3부 (1928년 4월 6일): 둘째 아들 제이슨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앞선 두 개의 부와는 달리, 그의 서술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논리적이지만, 분노와 냉소,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모두 가족 탓으로 돌리며, 특히 캐디가 낳고 떠난 조카 '미스 퀜틴'을 학대하고 그녀의 돈을 빼돌린다.

4. 부 (1928년 4월 8일):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주로 흑인 하녀 딜지의 시선에 초점을 맞춰 서술된다. 이 부활절 일요일 아침, 딜지는 벤지를 데리고 흑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며 위안을 얻는다. 한편, 미스 퀜틴은 제이슨이 훔쳤던 자신의 돈을 되찾아 서커스단 남자와 함께 야반도주한다. 소설은 제이슨의 분노와, 마차를 타고 늘 가던 길에서 벗어나자 발작적으로 울부짖는 벤지의 모습, 그리고 마차가 다시 익숙한 길로 돌아오자 비로소 울음을 그치는 마지막 장면으로 끝난다.

감상평

'음향과 분노'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시간과 기억의 붕괴'를 서사 형식 자체로 구현해냈다는 점이다. 포크너에게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심지어 과거는 지나가지도 않는다." 콤슨 가의 인물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와 기억 속에 영원히 갇혀 있다. 포크너의 '의식의 흐름' 기법은 이러한 인물들의 파편화된 내면을 독자가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로, 혼란스럽지만 지극히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이 작품은 또한 '몰락하는 구(舊)남부'에 대한 비극적인 만가(挽歌)이다. 한때 남부 귀족이었던 콤슨 가문은 과거의 명예와 허상에 집착(퀜틴)하다가, 급변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해체된다. 그들은 땅을 팔고(벤지의 목초지), 도덕적 중심을 잃었으며(캐디의 추방), 남은 것은 비정한 물질주의(제이슨)뿐이다.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듯, 이 작품은 '언어의 한계'를 탐구하기도 한다. 벤지는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만 소통하고, 퀜틴의 언어는 고통 속에서 맴돌 뿐이며, 제이슨의 언어는 사랑이 증발한 거래의 언어다. 이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찬' 이야기 속에서, 어쩌면 진정한 의미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허무주의적 시선이 짙게 깔려있다.

그러나 이 모든 비극과 붕괴 속에서, 흑인 하녀 '딜지'는 유일한 희망의 빛을 던진다. 그녀는 거창한 이론이나 강박 없이, 그저 묵묵히 사랑하고 인내하며 가족의 곁을 지킨다. 작가는 "나는 시작과 끝을 모두 보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세상 속에서도 인간의 숭고한 인내와 연민은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음향과 분노'는 독자에게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소설이지만, 그 고통스러운 독서 과정은 콤슨 가문의 비극을 더욱 깊이 체험하게 만든다. 포크너는 언어와 관점의 혁신적인 사용을 통해, 한 가족의 해체와 과거라는 비극적 유산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초상을 그려냈다. 이 작품은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결코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가 아닌, 인간 마음의 가장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심연을 파헤친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