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가 60년에 가까운 일생을 바쳐 완성한 희곡 '파우스트(Faust)'는 한 인간의 영혼을 건 신과 악마의 내기를 다룬, 서양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도 삶의 공허함에 절망한 노학자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영혼을 건 계약을 맺고 쾌락과 욕망의 세계로 뛰어드는 이 이야기는,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을 넘어섭니다. 이것은 멈추지 않는 인간의 '노력(Streben)'과 '지향' 그 자체를 긍정하며, 설령 죄를 짓고 방황하더라도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은 결국 구원받을 수 있다는 괴테의 장대한 인간 찬가입니다.
등장인물
- 파우스트 (Faust): 이 희곡의 주인공. 평생에 걸쳐 철학, 법학, 의학, 신학 등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 지식의 한계에 부딪혀 깊은 절망과 권태에 빠진 노학자입니다. 그는 이론이 아닌 실제 삶의 희로애락과 우주의 근원을 체험하고자 하는 무한한 갈망을 지닌 인물로, 지식과 경험을 향한 근대적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상징합니다.
- 메피스토펠레스 (Mephistopheles):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악마. 그는 전통적인 악마처럼 무시무시하기보다는, 냉소적이고 재치 있으며 세련된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항상 악을 원하면서도 항상 선을 행하는 힘의 일부'라고 칭하는 그는, 파우스트를 타락시키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가 안주하지 않고 계속 활동하도록 자극하는 역설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 그레트헨 (Gretchen / Margarete): 순수하고 신앙심 깊은 평범한 소녀. 젊어진 파우스트가 처음으로 만나 사랑에 빠지는 대상입니다. 그녀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파우스트' 1부의 핵심적인 사건을 이룹니다. 그녀는 파우스트의 이기적인 욕망에 의해 파멸에 이르지만, 그녀의 순수한 영혼은 마지막 순간 구원받으며 '영원히 여성적인 것'의 상징이 됩니다.
- 주(主, The Lord): '천상의 서곡'에 등장하는 신. 그는 인간의 나약함을 이해하면서도, "선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의식하고 있다"며 파우스트의 '노력하는 정신'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여줍니다. 그가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의 영혼을 건 내기를 허락하면서 이 거대한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줄거리 (1부)
이야기는 '천상의 서곡'에서 신(주)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내기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신이 아끼는 인간 파우스트를 유혹하여 타락시킬 수 있다고 장담하고, 신은 파우스트의 선한 본성을 믿으며 이를 허락한다.
장면이 바뀌어, 파우스트는 자신의 서재에서 책에 둘러싸인 채 지식의 무력함에 절망하며 자살을 기도한다. 그때 부활절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는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 그 후, 그의 앞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계약을 제안한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이 세상에서 파우스트의 하인이 되어 그가 원하는 모든 쾌락과 경험을 제공하되, 만약 파우스트가 어떤 순간에 너무나 만족하여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외치게 되면, 저세상에서는 파우스트의 영혼이 메피스토펠레스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결코 그런 순간이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피로 계약서에 서명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마녀의 약으로 파우스트를 혈기 왕성한 청년으로 만들고, 그를 세속적인 쾌락의 세계로 이끈다. 젊어진 파우스트는 길에서 순진한 소녀 그레트헨을 보고 첫눈에 반해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으로 그레트헨을 유혹하고,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연쇄적인 비극을 낳는다. 파우스트와의 밀회를 위해 그레트헨이 어머니에게 먹인 수면제는 결국 독약이 되어 어머니를 죽게 만든다. 그녀의 오빠 발렌틴은 동생의 명예를 더럽힌 파우스트에게 결투를 신청했다가 그의 칼에 찔려 죽는다. 죄책감과 슬픔으로 미쳐버린 그레트헨은 결국 자신이 낳은 파우스트의 아이를 물에 빠뜨려 죽이고, 영아 살해죄로 감옥에 갇힌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파우스트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그녀를 구하러 감옥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이미 실성한 그레트헨은 그의 구원을 거부하고, 자신의 운명을 신의 심판에 맡긴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가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순간, 하늘에서 "그녀는 구원받았노라!"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감상평
'파우스트'의 핵심 사상은 '노력하는 한, 인간은 방황한다(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는 구절에 집약되어 있다. 괴테에게 인간은 불완전하고 끊임없이 실수하며 방황하는 존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방황의 과정 속에서도 더 높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지향하는(streben)' 정신이다. 신은 파우스트의 이러한 역동적인 정신 자체를 긍정하며, 이는 '파우스트'가 단순한 권선징악의 도덕극을 넘어서는 이유가 된다. 파우스트의 죄는 끔찍하지만, 그의 동기는 지식과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인간 정신의 위대한 몸부림에서 비롯되었다.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의 성격 또한 매우 독특하다. 그는 순수한 악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조롱하는 '허무의 정령'이다. 그러나 그의 파괴적인 힘은 역설적으로 파우스트가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행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괴테는 악의 존재가 인간을 타락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을 자극하고 생성시키는 '필요악'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복합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레트헨의 비극은 이 거대한 철학적 드라마에 가슴 아픈 인간적 차원을 부여한다. 파우스트의 무한한 자아실현 욕구가 순수한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무참히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며, 이기적인 낭만주의의 위험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우주적 진리를 탐구하던 파우스트는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죄의 무게에 짓눌리게 된다. 그녀의 비극을 통해, 파우스트의 구원은 단순한 지적 탐구가 아닌, 구체적인 죄와 책임의 문제를 통과해야만 가능함을 암시한다.
결론적으로 '파우스트'는 근대인의 고뇌와 이상을 집대성한 문학의 에베레스트다. 이 작품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동경하며 겪는 방황과 모순, 그리고 그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노력의 가치를 장엄하게 그려낸다. 비록 죄를 짓고 비극을 초래할지라도,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한 인간의 영혼은 결국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괴테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과 위안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