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는 가까운 미래의 영국을 배경으로, 폭력과 범죄를 일삼는 한 십대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와 국가의 통제라는 문제를 극단적으로 탐구하는, 논쟁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주인공 알렉스는 '나드삿(Nadsat)'이라는 기이한 속어를 구사하며 '초월-폭력(ultra-violence)'을 즐기는, 매력적이지만 극도로 비도덕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국가가 시행하는 급진적인 심리 치료를 통해 폭력성을 제거당했을 때, 소설은 독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강제로 선하게 만들어진 인간은, 과연 진정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등장인물
- 알렉스 (Alex): 이 소설의 1인칭 화자이자 주인공. 그는 15세의 비행 청소년으로, 한 패거리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는 베토벤을 위시한 클래식 음악을 열렬히 사랑하는 심미적인 감수성과, 아무런 죄책감 없이 강도, 강간, 폭행을 저지르는 '초월-폭력'에 대한 열정을 동시에 지닌 인물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의지적인 범죄자에서, 국가에 의해 조종되는 자동인형을 거쳐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 알렉스의 친구들 (Alex's "Droogs"): 그의 폭력 패거리 일원들. 둔하고 힘만 센 딤(Dim), 야심가 조지(Georgie)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알렉스의 폭력 행위에 동참하지만, 결국 그를 배신하여 경찰에 붙잡히게 만듭니다.
- 루도비코 요법 (The Ludovico Technique): 알렉스가 감옥에서 받게 되는 실험적인 범죄 교정 프로그램. 이 요법은 약물 주사를 맞은 상태에서 눈을 강제로 고정한 채, 끔찍하게 폭력적인 영상들을 보게 하는 혐오 치료의 일종입니다. 이 치료를 통해 알렉스는 폭력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하려고만 해도 극심한 구역질을 느끼도록 조건화됩니다. 이는 인간의 정신을 통제하려는 국가 권력의 상징입니다.
- 교도소 목사 (The Prison Chaplain): 루도비코 요법에 반대하는 유일한 인물. 그는 알렉스라는 범죄자를 동정해서가 아니라, 신학적인 이유로 반대합니다. 그는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제거하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그를 '시계태엽 오렌지'—겉은 유기체(오렌지)지만 내부는 기계(시계태엽)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 F. 알렉산더 (F. Alexander): 소설 초반에 알렉스와 그의 패거리에게 아내가 잔인하게 강간당하는 피해를 입은 작가. 그는 나중에 '치료'된 알렉스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처음에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 채 현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 합니다.
줄거리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주인공 알렉스와 그의 친구들은 마약이 섞인 우유를 마시고, 밤거리로 나가 무차별적인 '초월-폭력'을 저지른다. 그들의 대화는 러시아어와 영어가 뒤섞인 그들만의 속어 '나드삿'으로 이루어진다. 한 가정집에 침입하여 작가인 F. 알렉산더를 폭행하고 그의 아내를 강간하는 등, 그들의 범죄 행각은 극에 달한다. 그러나 패거리 내의 권력 다툼 끝에, 알렉스는 동료들의 배신으로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경찰에 체포되어 14년 형을 선고받는다.
2부: 2년간의 수감 생활 후, 알렉스는 조기 석방을 대가로 정부가 시행하는 새로운 실험 치료, '루도비코 요법'에 자원한다. 그는 약물 때문에 구역질이 나는 상태에서, 눈이 고정된 채 몇 시간이고 폭력적인 영상을 강제로 시청해야만 했다. 이 치료는 '성공적'으로 끝나, 그는 이제 폭력이나 성적인 상상만 해도 몸이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조건반사적 인간이 된다. 그는 완벽하게 '교화'되어 사회로 풀려난다.
3부: '시계태엽 오렌지'가 된 알렉스의 삶은 비참하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방어할 수 없게 되어, 과거 자신이 괴롭혔던 사람들과 경찰이 된 옛 동료들에게 무력하게 폭행당한다. 그는 우연히 작가 F. 알렉산더의 집에 이르게 되고, 그곳에서 정부를 비판하려는 정치 세력의 도구로 이용당하며 괴롭힘을 당하다 결국 자살을 시도한다. 병원에서 깨어난 그는, 이 사건이 정치적 스캔들로 비화될 것을 우려한 정부에 의해 그의 조건반사 치료가 '해제'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다시 예전처럼 폭력적인 충동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영국판 원작의 21장)에서, 시간이 흘러 18세가 된 알렉스는 폭력에 점차 싫증을 느끼고, 자신도 가정을 꾸리고 아들을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성숙해가는 모습을 암시하며 끝난다.
감상평
이 소설의 핵심은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국가는 범죄를 없애기 위해 개인의 자유의지를 제거할 도덕적 권리가 있는가? 교도소 목사의 말처럼, 진정한 선(善)이란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여야만 한다. 강제로 선하게 만들어진 '시계태엽 오렌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기계에 불과하다. 버지스는 독자들을 알렉스와 같은 흉악범의 '선택할 권리'를 옹호해야 하는, 지극히 불편한 입장으로 몰아넣는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또한 국가 권력의 위험성에 대한 강력한 디스토피아적 비판이다. 소설 속 정부는 알렉스의 영혼이나 진정한 교화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오직 범죄율을 낮추기 위한 빠르고 효율적인 기술적 해결책을 원할 뿐이다. 루도비코 요법은 완벽하게 통제되고 프로그램될 수 있는 시민을 만들려는, 전체주의적 통제의 상징이다.
또한 이 작품은 선과 악의 단순한 정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알렉스는 명백히 혼돈의 악을 상징한다. 그러나 국가가 가하는 차갑고 계산적이며 위선적인 '선'은 과연 더 나은 것인가? 정부에 반대하는 작가 F. 알렉산더조차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알렉스를 희생시키려 하는 모습을 통해, 선한 의도조차 타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시계태엽 오렌지'는 충격적이고, 독창적이며, 지극히 철학적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언어적 독창성과 비호감 가득한 주인공, 그리고 어려운 도덕적 질문들을 통해 매 순간 독자에게 도전한다. 앤서니 버지스는 쉬운 답을 제시하는 대신, 폭력과 자유가 공존하는 세상과, 자유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두 가지 끔찍한 선택지를 우리 앞에 내놓는다. 이 소설은 인간의 '선택'이라는 가치를, 그것이 아무리 추하고 파괴적일지라도,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를 위해 희생시키는 것의 위험성에 대한, 영원하고도 필요한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