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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등장인물 줄거리 감상평

행복한삶누리기 2025. 7. 4. 14:12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는 "두 막에 걸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희곡으로 유명한, 현대 연극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시골길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방랑자가 '고도'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내용의 전부입니다. 이 작품은 명확한 줄거리, 성격의 발전, 극적인 해결을 의도적으로 거부합니다. 대신, 의미를 상실한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처절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통해 '기다림' 그 자체의 의미를 묻는 심오한 철학적 우화입니다.

등장인물

  • 블라디미르 (Vladimir / '디디'): 두 주인공 중 한 명. 그는 에스트라공보다 더 이성적이고 희망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인물입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잘 기억하고,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그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인간의 지성적 측면을 대표합니다.
  • 에스트라공 (Estragon / '고고'): 블라디미르의 동반자. 그는 더 충동적이고 건망증이 심하며, 아픈 발이나 배고픔 같은 육체적 고통에 더 민감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결국 블라디미르의 설득에 남아있게 됩니다. 그는 인간의 육체적, 감정적, 회의적인 측면을 상징합니다.
  • 포조 (Pozzo): 극의 1막과 2막에 한 번씩 등장하는, 거만하고 위압적인 주인. 1막에서 그는 채찍을 휘두르며 노예 럭키를 끌고 나타나 자신의 권력을 과시합니다. 그러나 2막에서는 장님이 된 채 나타나 럭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무력한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권력의 허무함과 인생의 예측 불가능성을 상징합니다.
  • 럭키 (Lucky): 포조의 노예. 그는 짐을 잔뜩 짊어진 채 밧줄에 묶여 있으며, 주인의 명령에만 기계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는 1막에서 명령을 받자, 논리적인 듯하지만 뒤죽박죽인 장광설("생각하라!")을 쏟아내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2막에서는 벙어리가 되어 나타납니다. 그는 억압받는 육체, 혹은 지성과 언어의 파괴를 상징하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입니다.
  • 소년 (A Boy): 매 막의 끝에 나타나 "고도 씨는 오늘 밤엔 못 오시고, 내일은 꼭 오실 것"이라는 똑같은 전갈을 남기는 메신저. 그는 오지 않는 구원(고도)에 대한 희미한 약속을 전달하며, 기다림을 계속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줄거리

1막: 시골길의 앙상한 나무 곁에 두 방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있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신발을 벗거나, 당근을 먹거나, 서로를 모욕하거나, 나무에 목을 매달아볼까 고민하는 등, 의미 없어 보이는 대화와 행동을 반복한다. 그때, 거만한 주인 포조가 노예 럭키를 밧줄로 묶어 끌고 등장한다. 포조는 이들 앞에서 과시적으로 닭고기를 먹고, 럭키에게 춤을 추고 '생각'을 해보라고 명령한다. 포조와 럭키가 떠난 후, 한 소년이 나타나 고도 씨가 오늘은 오지 못하지만 내일은 꼭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떠나기로 하지만, 무대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2막: 다음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 어제와 모든 것이 비슷하지만, 앙상하던 나무에 잎사귀 몇 개가 돋아나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며, 전날과 비슷한 대화와 행동을 반복한다. 다시 포조와 럭키가 나타나지만, 이제 포조는 장님이 되었고 럭키는 벙어리가 되었다. 포조는 어제 이들을 만났던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이 비틀거리며 떠난 후, 어제와 똑같은 소년이 나타나 똑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고도 씨는 오늘 밤엔 못 오시고, 내일은 꼭 오실 겁니다." 희곡은 1막과 똑같은 마지막 대사와 지문으로 끝난다. "자, 갈까?" "가세."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감상평

'고도를 기다리며'의 핵심은 '인간 조건의 부조리(Absurdity)'를 무대 위에 형상화한 데 있다. 베케트는 신도, 삶의 의미도, 명확한 목적도 부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던져진 인간의 모습을 두 방랑자를 통해 보여준다. 그들은 왜 기다리는지,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저 기다린다. 이 무의미한 기다림의 시간 동안 그들이 벌이는 행위들은, 우리가 삶의 공허함을 잊기 위해 일상적으로 벌이는 모든 활동들에 대한 은유이다.

이 작품에서 '희망'은 구원이자 동시에 굴레로 작용하는 역설적인 모습을 띤다. 고도가 '내일은 올 것'이라는 희망은 그들이 절망에 빠져 자살하는 것을 막아주는 유일한 동력이다. 그러나 바로 그 희망 때문에 그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무의미한 기다림의 순환에 영원히 갇히게 된다. 베케트는 희망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과, 그 희망이 어떻게 우리를 속박하는지를 탁월하게 포착한다.

또한 이 작품에서 시간과 기억은 끊임없이 붕괴한다. 어제와 오늘이 뒤섞이고, 인물들은 방금 일어난 일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이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근대적 믿음이 무너진 20세기 중반의 불안을 반영한다. 역사는 순환할 뿐이며, 인간은 똑같은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사이의 '관계'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다투고, 서로를 떠나겠다고 위협하지만, 결국 서로를 떠나지 못한다.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대화와 동지애는 이 부조리한 세계를 견디게 하는 유일한 힘이다.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세상에서,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유일하게 남은 인간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의 관습을 파괴함으로써, 관객에게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고도'가 신이든, 죽음이든, 혹은 그저 허상에 불과하든, 그 정체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베케트는 답을 주는 대신, 답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처절하고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은 기다림이라는 행위 자체에 담긴 인간의 비극과 희극을 동시에 담아낸, 우리 시대를 위한 가장 위대한 연극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