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가 17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존엄성과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위대한 서사시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처럼, 작품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의 옥살이를 한 장 발장을 중심으로, 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려냅니다. 작가는 냉혹한 법과 따뜻한 양심의 대립을 통해, 진정한 정의란 무엇이며 한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등장인물
- 장 발장 (Jean Valjean):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성인의 경지를 보여주는 인물.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을 훔쳤다가 19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출소 후에도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세상을 증오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의 조건 없는 사랑과 용서에 감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시장 '마들렌'으로 신분을 숨기고 선행을 베풀지만, 평생 자베르 경감에게 쫓기는 운명에 처합니다. 그의 삶은 숭고한 희생과 끝없는 양심의 투쟁으로 점철됩니다.
- 자베르 (Javert): 법과 원칙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냉혹한 경찰관. 감옥에서 태어난 자신의 출신 때문에 오히려 더욱 광적으로 법질서에 집착합니다. 그에게 법은 선과 악을 가르는 유일한 잣대이며, 한번 죄를 지은 자는 영원한 죄인이라고 믿습니다. 평생 장 발장을 추격하지만, 자신이 경멸하던 죄수에게 목숨을 구원받는 경험을 한 뒤 신념 체계가 무너지며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인간적 연민이 배제된 냉혹한 사회 시스템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 팡틴 (Fantine):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여인. 순진한 시절 사랑에 빠졌으나 남자에게 버림받고, 딸 코제트를 부양하기 위해 머리카락과 앞니를 팔고 결국 매춘부로 전락합니다. 그녀의 삶은 당시 산업혁명기 하층민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극심한 사회적 불의와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코제트 (Cosette): 팡틴의 딸. 어머니의 죽음 후 탐욕스러운 테나르디에 부부의 여관에서 학대받으며 자라지만, 장 발장에 의해 구출되어 그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합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 마리우스 (Marius): 공화주의 사상에 심취한 이상주의적인 청년. 귀족인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나, 나폴레옹의 장교였던 아버지의 진실을 알게 된 후 가문을 떠나 가난한 생활을 합니다. 코제트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며, 1832년 6월 파리 공화파 봉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 테나르디에 부부 (The Thénardiers): 코제트를 학대한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여관 주인 부부.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기생충 같은 존재로, 가난이 낳은 또 다른 형태의 순수한 악(惡)을 보여줍니다.
줄거리
19년간의 옥살이를 마친 장 발장은 사회의 냉대 속에서 다시 증오에 사로잡히지만,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은촛대까지 훔친 자신을 용서해 준 미리엘 주교를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고 선한 삶을 살기로 맹세한다. 그는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숨기고 사업가로 성공하여 한 도시의 시장이 되지만, 그의 뒤를 쫓는 자베르 경감의 그림자는 항상 그를 위협한다.
어느 날, 자신의 공장에서 해고된 후 비참한 삶을 살게 된 팡틴을 만나 그녀의 딸 코제트를 돌봐주기로 약속한다. 억울한 사람이 자신으로 오인받아 체포되자, 장 발장은 시장의 지위를 포기하고 법정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힌 뒤 다시 수감된다. 탈옥에 성공한 그는 팡틴의 유언대로, 테나르디에 부부의 여관에서 학대받던 어린 코제트를 구해내 자신의 딸처럼 키우며 파리에서 숨어 지낸다.
세월이 흘러 아름답게 성장한 코제트는 청년 마리우스와 사랑에 빠진다. 한편, 파리에서는 왕정에 반대하는 공화주의자들의 봉기가 일어나고, 마리우스도 이 혁명에 가담한다. 장 발장은 코제트의 연인을 구하기 위해 총탄이 빗발치는 바리케이드로 뛰어든다. 그곳에서 그는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어깨에 메고 파리의 어두운 하수도를 통해 탈출시키는 한편, 자신을 체포할 절호의 기회를 잡은 자베르를 오히려 풀어주는 선택을 한다.
평생의 신념이었던 '법'이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죄인'의 '자비' 앞에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자베르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 센 강에 몸을 던진다. 모든 시련이 끝난 후, 장 발장은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결혼을 조용히 지켜본 뒤, 자신의 과거가 그들의 행복에 누가 될까 봐 스스로 그들 곁을 떠난다. 마리우스는 뒤늦게 모든 진실을 알게 되고, 코제트와 함께 임종을 앞둔 장 발장을 찾아간다. 장 발장은 두 사람의 품 안에서 미리엘 주교에게 약속했던 정직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완성하고 평온하게 눈을 감는다.
감상평
'레 미제라블'은 한 인간의 영혼이 어디까지 숭고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구원의 파노라마다. 이 작품의 심장은 단연 '법'으로 상징되는 자베르와 '양심'으로 대표되는 장 발장의 대립에 있다. 빅토르 위고는 용서받지 못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믿는 자베르의 냉혹한 정의와, 용서받은 경험을 통해 평생 타인을 용서하며 살아가는 장 발장의 따뜻한 정의를 대비시킨다. 이를 통해 그는 인간이 만든 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진정한 구원은 법의 심판이 아닌 사랑과 자비에서 비롯된다는 위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미리엘 주교의 은촛대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을 통째로 사들인 신의 은총을 상징하는 강력한 메타포다.
또한 이 작품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다. 작가는 팡틴의 비극, 코제트의 학대, 가난 때문에 범죄자가 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개인의 불행이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회 구조의 책임임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레 미제라블'은 단순히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넘어, 무엇이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강력한 사회 고발 문학이다.
장 발장이 보여주는 끝없는 자기희생의 삶은 이 작품을 단순한 소설 이상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그는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하는 딸 코제트의 곁마저도 오직 양심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포기한다. 바리케이드에서 마리우스를 구하고, 평생의 숙적인 자베르마저 풀어주는 그의 모습은 인간의 이기심을 초월한 성자의 경지를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레 미제라블'은 한 편의 잘 짜인 이야기를 넘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장 발장의 묵직한 삶의 궤적과 자베르의 고뇌, 팡틴의 눈물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작품은 시대를 넘어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잃지 않게 하는 영원한 고전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