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위대한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 '의사 지바고(Доктор Живаго)'는,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이어지는 내전이라는 20세기 초의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통과해야 했던 한 인간의 삶과 사랑을 그린 장엄한 서사시입니다. 이 작품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한 개인의 내면과 삶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이유로 소련에서 출판이 금지되었고,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의 영예와 함께 조국에서의 극심한 박해를 안겨주었습니다. '의사 지바고'는 이념의 광풍 속에서도 사랑과 예술, 그리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지키려 했던 한 지식인의 비극적인 초상이며, 역사의 무자비한 힘에 맞선 개인 정신의 고귀한 저항에 대한 기록입니다.
등장인물
- 유리 안드레예비치 지바고 (Yuri Andreevich Zhivago): 이 소설의 주인공. 의사이자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 그는 혁명의 열광이나 정치적 투쟁에 가담하기보다는, 한 명의 관찰자로서 시대의 혼란 속에서 인간성과 개인의 삶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그는 아내 토냐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그리고 운명적인 여인 라라를 향한 열정적인 사랑 사이에서 고뇌합니다. 그는 이데올로기에 짓밟히는 개인의 의식, 예술, 그리고 생명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 라리사 "라라" 표도로브나 안티포바 (Larisa "Lara" Fyodorovna Antipova): 이 소설의 여주인공. 강인하고 순수하며, 깊은 슬픔을 간직한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어린 시절, 부유하고 타락한 변호사 코마롭스키에게 유린당한 상처를 안고 혁명가 파샤 안티포프와 결혼하지만, 훗날 지바고와 운명적이고도 위대한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녀는 고통받으면서도 모든 것을 인내하는 러시아의 영혼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 빅토르 이폴리토비치 코마롭스키 (Victor Ippolitovich Komarovsky): 부유하고 냉소적인 변호사. 그는 어떤 정치 체제 하에서도 살아남는 기회주의자로, 젊은 라라를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인물입니다. 그는 소설 전체에 걸쳐 운명처럼 나타나 인물들의 삶을 위협하는, 부패하고 사악한 힘을 상징합니다.
- 파벨 "파샤" 파블로비치 안티포프 / 스트렐니코프 (Pavel "Pasha" Pavlovich Antipov / Strelnikov): 라라의 남편. 순수하고 이상주의적인 청년이었으나, 혁명의 광기 속에서 '스트렐니코프(사격수)'라는 이름의 냉혹하고 무자비한 적군(赤軍) 사령관으로 변모합니다. 그는 인간적인 감정을 거세한, 차갑고 추상적이며 파괴적인 혁명 이데올로기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 안토니나 "토냐" 알렉산드로브나 그로메코 (Antonina "Tonya" Alexandrovna Gromeko): 지바고의 헌신적인 아내. 혁명 이전의 평화롭고 교양 있는 가정의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지바고의 곁을 묵묵히 지키지만, 결국 역사의 격랑 속에서 그와 이별하고 외국으로 추방되는 비운을 겪습니다.
줄거리
소설은 20세기 초, 어린 유리 지바고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수십 년에 걸친 그의 삶을 따라간다. 의사가 된 지바고는 어릴 적 친구인 토냐와 결혼하여 안정된 가정을 꾸린다. 그의 삶은 여러 차례 운명적으로 라라와 교차한다. 그는 라라가 코마롭스키를 저격하려다 실패하는 크리스마스 파티 현장에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의관으로, 라라는 간호사로 복무하며 전선에서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이 끌리지만, 각자의 가정을 지키려 애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모스크바는 굶주림과 이념 투쟁으로 혼란에 빠진다. 지바고는 가족과 함께 시베리아 우랄산맥 근처의 외딴 영지 바리키노로 피신한다. 그곳에서 그는 인근 마을에 살던 라라와 재회하고, 두 사람은 마침내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러시아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두 사람은 잠시나마 정치적 혼란을 잊고 창조와 사랑의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이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바고는 적군 파르티잔에게 납치되어 거의 2년간 강제로 군의관 생활을 하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돌아왔을 때, 라라와 그녀의 딸은 이미 행방불명된 후였다. 폐허가 된 바리키노에 홀로 남아, 그는 절망 속에서 자신의 삶과 사랑을 시(詩)로 남긴다. (이 시들은 소설의 마지막 장을 구성한다.)
세월이 흘러 쇠락한 모스크바로 돌아온 지바고는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붐비는 전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그는 길을 걷고 있는 라라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스쳐 보지만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친구들은 수십 년이 지나 그의 존재와 그가 남긴 시들이 사람들에게 조용히 전파되고 있음을 확인하며 희망의 여운을 남긴다.
감상평
'의사 지바고'의 핵심 주제는 '거대한 역사와 개인의 삶' 사이의 대립이다. 주인공 지바고는 혁명의 영웅도, 반동도 아니다. 그는 적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서로를 죽이는 이념의 광기를 거부하고, 오직 한 개인의 삶, 사랑, 고통, 그리고 창조의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하다고 믿는다. 이 소설은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희생시키라고 요구하는 모든 전체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역사는 개인의 삶을 무참히 휩쓸고 지나가는, 거대하고 비정한 힘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 지바고가 추구하는 가치는 '생명'과 '사랑', 그리고 '예술'이다. 의사로서 그는 생명을 존중하고, 라라의 연인으로서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의 힘을 경험하며, 시인으로서 그는 혼돈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진실을 포착하여 영원한 예술로 승화시킨다. 사랑과 예술은 비인간적인 국가 권력에 맞서는 가장 인간적인 형태의 정신적 저항이 된다.
위대한 시인이었던 파스테르나크는 이 소설에 러시아의 자연에 대한 눈부신 묘사를 가득 담았다. 눈보라, 자작나무 숲, 마가목 등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풍경은, 인간 사회의 갈등과 파괴적인 모습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자연은 정치 이념이 사라진 후에도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력 그 자체를 상징한다.
결론적으로 '의사 지바고'는 한 시대의 비극을 담은 장대한 역사 소설이자, 한 남자의 영혼을 그린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며,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심오한 철학적 선언이다. 파스테르나크는 모든 것을 잃을 각오로, 정치적 구호 대신 개인의 삶과 예술의 가치를 찬미하는 작품을 썼다. '음향과 분노'로 가득 찬 역사 앞에서, 이 소설은 한 평범한 개인의 삶과 사랑, 그리고 그가 남긴 한 줌의 시가 지닌 조용하지만 영원한 힘을 감동적으로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