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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아큐정전 줄거리 감상평

행복한삶누리기 2025. 7. 6. 03:00

'아큐정전(阿Q正傳)'은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1921년에 발표한, 근대 중국 문학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중편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이름도, 집도, 제대로 된 직업도 없는 날품팔이꾼 '아큐'의 파란만장하고도 비참한 일생을 '정전(正傳, 공식적인 전기)'이라는 반어적인 형식으로 그려냅니다. 아큐는 굴욕적인 패배를 당할 때마다 자신만의 기이한 방식으로 정신적인 승리를 거두는, 이른바 '정신승리법'의 대가입니다. 루쉰은 이 잊을 수 없는 반(反)영웅 캐릭터를 통해,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고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던 20세기 초 중국 사회의 병폐와 민중의 우매함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

  • 아큐 (Ah Q): 이 소설의 주인공. 웨이좡이라는 시골 마을의 사당에 기거하며 날품을 파는 최하층 인물입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툭하면 얻어맞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아들놈에게 맞은 셈이다"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뺨을 때리며 때린 놈이 자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등, 모욕적인 현실을 정신적인 승리로 둔갑시키는 '정신승리법'으로 살아갑니다. 그는 무지하고, 비굴하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인물로, 루쉰이 진단한 당시 중국 민중의 병리적 초상입니다.
  • 자오 나리 (趙太爺, 조태야): 웨이좡에서 가장 세력이 있는 지주이자 지식인. 그는 아큐가 감히 자신과 같은 자오(趙)씨 성을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노하며 아큐를 멸시하고 억압합니다. 그는 부패하고 위선적인 봉건 지배 계층을 상징합니다.
  • 가짜 양놈 (假洋鬼子, 가양귀자): 외국 유학을 다녀온 지주의 아들. 서양식 지팡이인 '문명장'을 휘두르며 아큐를 괴롭힙니다. 그는 서양 문물을 피상적으로만 모방했을 뿐, 그 본질적인 정신은 이해하지 못한 채 민중 위에 군림하려는 당시 일부 지식인들의 행태를 풍자합니다.
  • 혁명당 (革命黨): 1911년 신해혁명의 주체들. 아큐에게 혁명은 낡은 질서를 타파하는 이념적 활동이 아니라, 자오 나리의 집을 약탈하고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뿐입니다. 그러나 정작 마을의 '혁명당' 역시 기존의 기득권층이 명패만 바꿔 단 것으로, 그들은 아큐를 자신들의 무리에서 철저히 배제합니다.

줄거리

웨이좡 마을의 날품팔이 아큐의 삶은 굴욕의 연속이다. 그는 마을의 건달들에게 얻어맞고, 조롱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승리법'을 발동시켜 모욕감을 자존감으로 바꾸며 살아간다. 그는 자신보다 약한 비구니를 희롱하는 것으로 자신의 힘을 확인하기도 한다.

어느 날 그는 자오 나리의 집 하녀인 우마(吳媽)에게 수작을 걸다가 들켜 된통 두들겨 맞고 마을에서 완전히 고립된다. 일거리를 잃은 그는 성안으로 들어가 도둑질을 배워서 돈을 좀 만져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돈을 보고 잠시나마 그를 সমী해하지만, 그의 돈이 곧 바닥나자 다시 예전처럼 그를 경멸한다.

이때 마을에 신해혁명의 소식이 들려온다. 아큐는 혁명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혁명당'에 가담하여 자오 나리의 재산을 빼앗고 복수할 달콤한 꿈에 부푼다. 그는 혁명당을 상징하는 흰 완장을 두르고 의기양양하게 마을을 활보하지만, 정작 마을의 권력을 장악한 '가짜 양놈'을 비롯한 기득권층은 그를 혁명의 동지로 받아주지 않는다.

혁명의 혼란 속에서 자오 나리의 집이 도둑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국은 희생양이 필요했고, 만만한 아큐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된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그는, 관리의 강압에 못 이겨 죄상도 모르는 자백서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서명'한다.

결국 아큐는 총살형을 당하기 위해 수레에 실려 거리를 행진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목을 벨 칼이 왜 동그랗지 않은지 의아해한다. 그의 처형을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은 그를 동정하기는커녕, 총살이 참수형보다 재미없는 구경거리라며 시시해할 뿐이다.

감상평

'아큐정전'의 가장 위대한 문학적 성취는 '정신승리법'이라는 개념을 통해 한 시대의 병폐를 상징적으로 압축해낸 데 있다. 루쉰은 아큐의 자기기만을, 서구 열강의 침략과 봉건 체제의 모순 앞에서 무력하게 패배하면서도 과거의 영광에만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던 당시 중국의 모습을 비판하는 강력한 알레고리로 사용했다. 굴욕적인 현실을 직시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꾀하는 대신, 정신적인 자위로 상처를 봉합하는 것은 결코 진정한 승리가 될 수 없으며, 결국에는 파멸로 이어진다는 것이 루쉰의 날카로운 진단이었다.

그러나 루쉰의 시선은 아큐 개인에 대한 비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아큐를 무지하고 비참하게 만든 사회 구조에 더 근본적인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아큐는 자신을 억압하는 강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학습하여 자신보다 약한 자를 억압한다. 이는 폭력과 억압이 대물림되는 봉건적 사회 시스템의 비극을 보여준다. 또한 그가 혁명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위로부터의 개혁이 민중의 각성 없이는 얼마나 공허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 소설에서 가장 서늘한 부분은 혁명에 대한 냉소적인 묘사다. 아큐에게 등을 돌린 '혁명당'은 결국 기존의 지배계급이 옷만 갈아입은 것에 불과했다. 그들은 혁명의 이상을 실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으며, 아큐와 같은 최하층 민중을 또다시 희생양으로 삼는다. 이는 혁명이란 이름 아래 자행될 수 있는 또 다른 폭력과 위선을 고발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큐정전'은 한 인물의 희비극을 통해 한 민족의 영혼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을 시도한 작품이다. 루쉰은 아큐라는 캐릭터를 통해 동포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병든 사회를 진단하고 치유해야 한다"는 의사 출신 작가의 깊은 애정과 절박함이 담겨있다. 자기기만과 무지,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구경꾼들의 사회가 어떻게 파멸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시대를 넘어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서 여전히 유효한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