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양 문학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캐릭터들로 손꼽힙니다. 이들은 단순한 이야기의 참여자를 넘어, 인간 본성에 내재된 이상과 현실, 광기와 이성이라는 영원한 주제를 온몸으로 구현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작품의 심장과도 같은 주인공 돈키호테의 본명은 알론소 키하노로, 라만차 지방에 사는 평범한 시골 지주입니다. 그는 기사도 소설에 너무 깊이 빠져든 나머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잃어버리고, 스스로 편력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되어 세상의 모든 악과 불의를 바로잡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모험을 떠납니다. 그는 풍차를 거인으로, 여관을 성으로, 양 떼를 거대한 군대로 착각하며 돌진하는 등 시종일관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그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애처롭기까지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고결한 이상주의는 부패하고 이기적인 현실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돈키호테의 곁을 지키는 인물은 그의 충직한 시종 산초 판사입니다. 그는 돈키호테와는 정반대로,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농부입니다. 그는 돈키호테가 약속한 '섬의 영주' 자리를 얻기 위해 여정에 동행하지만, 주인의 광기 어린 행동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투덜거립니다. 산초는 땅에 발을 딛고 서서 먹고 자는 문제에 집착하며, 돈키호테의 허황된 이상과 계속해서 충돌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는 점차 주인의 순수한 마음에 동화되어 가며, 때로는 돈키호테의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인물이 나누는 끝없는 대화와 그 속에서 싹트는 미묘한 우정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동력입니다. 마지막으로, 돈키호테의 모든 기사 행위의 원동력이 되는 '둘시네아 델 토보소' 공주가 있습니다. 그녀는 사실 이웃 마을의 평범하고 건장한 농부의 딸 알돈사 로렌소이지만, 돈키호테의 상상 속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로 추앙받습니다. 그녀는 작품에 직접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돈키호테의 이상과 상상력 그 자체를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줄거리
'돈키호테'의 줄거리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한 시골 지주가 기사도 소설에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 기사가 되어 떠나는 파란만장한 모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1부에서 라만차의 시골 지주 알론소 키하노는 낡은 갑옷을 꺼내 입고, 늙고 비쩍 마른 말에게 '로시난테'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여주며 스스로를 편력 기사 돈키호테라 칭합니다. 그는 상상 속의 연인 둘시네아 공주에게 영광을 바치겠다 맹세하고 첫 번째 모험을 떠납니다. 그는 시골 여관을 웅장한 성으로 착각하고 여관 주인에게 기사 서품을 받기도 하고, 거대한 풍차를 사악한 거인이라 여기며 덤벼들었다가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기도 합니다. 그의 모든 행동은 현실 세계와 충돌하며 웃음과 함께 깊은 연민을 자아냅니다. 첫 모험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을 보좌할 시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웃 농부인 산초 판사를 '섬 하나를 떼어주겠다'는 약속으로 설득하여 두 번째 여정에 오릅니다.
2부의 이야기는 1부의 내용이 책으로 출판되어 돈키호테와 산초가 이미 유명 인사가 되었다는 설정에서 시작됩니다. 이제 두 사람이 만나는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으며, 그들의 광기를 이용하여 짓궂은 장난을 치며 즐거워합니다. 한 공작 부부는 이들을 자신의 성으로 초대하여 극진히 대접하는 척하면서 정교한 연극을 꾸미고, 심지어 산초에게 약속했던 '섬'을 다스리게 해주는 장난까지 칩니다. 이 과정에서 순박했던 산초는 의외의 지혜를 발휘하여 명판결을 내리기도 하며 인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는 가운데, 돈키호테는 '하얀 달의 기사'로 변장한 고향 친구와의 결투에서 패배하고 기사직을 은퇴하라는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돈키호테는 깊은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게 되고, 임종 직전에서야 모든 광기에서 깨어나 자신의 본명인 알론소 키하노로 돌아옵니다. 그는 기사도 소설의 허황됨을 비판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평온하게 눈을 감습니다.
감상평
'돈키호테'는 단순히 정신 나간 늙은이의 우스꽝스러운 행적을 기록한 희극 소설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출간된 지 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최초의 근대 소설'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는, 그 안에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고 다층적인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이상과 현실의 영원한 대립'입니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믿는 고결한 이상의 세계를 현실에 구현하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신념을 비웃고 폭력으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그의 처절한 실패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순수한 이상과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팍팍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작가는 과연 맹목적인 이상주의와 속물적인 현실주의 중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삶인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며, 독자에게 그 답을 스스로 찾도록 유도합니다.
또한, 이 작품은 '광기와 이성은 과연 무엇으로 구분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돈키호테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명백한 광인이지만, 그의 행동 동기는 언제나 약자를 돕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순수한 선의에서 비롯됩니다. 반면, 그를 조롱하고 이용하는 공작 부부와 같은 '정상인'들의 행동은 지극히 이성적이지만 악의적이고 비인간적입니다. 이를 통해 세르반테스는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며, 진정한 광기는 오히려 순수한 열정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차가운 현실주의에 있는 것이 아닌지 묻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돈키호ote'는 책과 이야기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메타픽션'의 효시이기도 합니다. 책에 미쳐 현실을 망각한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다시 책이 되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냅니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삶을 구성해 나가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결국 돈키호테는 실패한 기사였을지 몰라도,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꿈을 꾸는 것의 가치와 인간다움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묻는 영원한 걸작으로 남아있습니다.